3월 어린이집에 입학한 이후, 약을 먹인 날이 안 먹인 날보다 훨씬 더 많다.(거의 쉼 없이 약을 먹었지. 근데 또래 아기 키우는 친구나 선배 이야기 들어보니 다들 똑같더라구) 3월부터 거의 석 달 동안 감기에 계속 걸려있는 것 같다. (콧물 흐르는 느낌이 싫고, 코가 흐르면 세상 무너지는 줄 아는 아기 덕분에,, 쉽지 않은 석 달이었다.)아마 어느 시점 이후로는 감기라기보다는, 그냥 콧물이 계속 난다고 표현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두 돌 갓 지난 아이가 열나고 콧물 나고 기침하면 병원에 안 갈 수 없다. 감기인 것 같고 대부분 감기겠지만, 혹시 다른 병일까 걱정되어 병원에 간다. 그리고 아직 면역이 약한 아기다 보니 혹시나 감기 때문에 더 큰 합병증이 생길까 싶어 가본다. 처음에는 병원 진료를 받고 오면 어느 정도 안심도 되고 좋았다. 큰 병은 아니고 그냥 다들 걸리는 감기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냥 다들 걸리는 감기" 때문에 석 달 동안 항생제를 먹이고 있다는 점이 문득 불안해졌다.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파워 J 아범)
역시나 명확한 해답은 없었다. 그런 해답이 있었다면 어떤 의사는 항생제를 처방하고, 어떤 의사는 안 하고, 어떤 의사는 약을 아예 처방 안 하고 하는 그런 혼란스러움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일단 알게 된 것은, 항생제는 몸에 있는 유익균도 죽이고 면역력도 약화시키기 때문에 특히 어린 아이의 경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써야 한다는 것이고,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이 OECD 3위로 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일기가 르뽀로 흐르는 느낌적 느낌) 감기의 8~90%는 바이러스 감염이라 항생제가 효과가 없고, 감기 합병증 예방, 발열, 기침, 콧물, 중이염, 부비동염 등에 대부분은 효과가 없고, 그러니깐 진짜 정말로 세균으로 인한 감염일 때에만 쓰라고 하는 식약처의 책자 내용(https://www.mfds.go.kr/brd/m_861/down.do?brd_id=rgn0045&seq=2727&data_tp=A&file_seq=1)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항생제를 쓰기 시작했다면 의사의 지시에 따라 끝까지 복용하지 않으면 항생제 내성균이 증가한다고 한다.
이미 항생제를 먹기 시작한 복덩이는 그 지시를 "끝까지" 따라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지금이라도 안 먹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먹는 약이었다면, 그냥 안 먹었을 거다. 애초에 병원에 안 갔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 몸이 아니라 아이의 몸이니 그렇게 과감히 할 수가 없다. 병원에 안 가고 병원에서 처방한 약 안 먹였다가 혹시나 문제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무 생각 없이 병원 가서 계속 처방받고 약 먹이고 하다가, 장기적으로 아이 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더 커지기도 한다. 동네 병원에서는 당장 오늘 내일의 증상에만 대응할 방법을 알려 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장기적인 복덩이의 건강 기반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좋았어, 이게 바로 육아의 주도성이다!)
오늘 그동안 모아 놓은 약 봉투를 쭉 훑어봤다. 항생제는 처음 감기로 약 먹기 시작할 때부터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항생제 종류도 다양하고, 너무 계속 먹어왔다. 마음이 착잡해졌다. 하원하고 병원으로 걸어가면서도,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수십 번 들었다. 그래도 일단 갔다. 다행히 이제 많이 나은 것 같다고, 항생제는 빼고 콧물 말려준다는 약(+정장제 등)만 처방해 주셨다.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항생제가 생긴 이후로 인류의 수명이 엄청나게 연장됐다고 한다. 정말 아플 때는 병원의 치료를 꼭 받아야 하는 게 맞는데, 아이의 감기는 그 경계선에 있는 것 같다. 정말 치료가 필요한 건지 내가 판단하기 너무 어렵다. 복덩이 신생아 시절에 대학병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음 고생하다가, 처음 진단한 병원과 마지막에 간 병원의 진단 자체가 판이했던 기억도 난다. 복덩이는 아기니까 보호자인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게 늘 어렵지만, 그래도 보호자인 내가 고민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게 참 어렵다.(고민하다 보면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