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가! 내가 할 거야!

요즘 저는 매일 제 곁에 붙어 잠시도 혼자 놀지 않는 아기와 무얼 하며 놀지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그저 곁에 있어만 주어도 아기는 좋아하는 것 같지만, 저는 조금 심심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오랜만에 ‘차이의 놀이’라는 앱을 열었습니다. 발달연령별로 아기와 함께 놀 수 있는 놀이를 추천해 주는 서비스인데요,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를 주로 알려줍니다. 상단에 추천으로 뜬 18개월 아기 놀이로 ‘쌀로 그림 그리기’가 있길래 바로 시도해 보았습니다.

쟁반에 쌀을 펼쳐 놓고 촉감 놀이를 하다, 손가락으로 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간단하고 쉽게 아기와 시간을 보내기 좋은 놀이였지요. 아기는 제가 쌀을 꺼내자마자 역시나 득달같이 달려와 손을 뻗기 시작했습니다.

“자 봐봐, 이렇게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 볼까?” 

이론과 현실은 언제나 왜 다를까요.

저는 왜 쌀을 그렇게 많이 쟁반에 올렸을까요.

이거 분명 아주 쉽고 간단한 놀이였는데...

쌀로 그림을 그려보려던 제 생각과는 당연히 다르게 아기는 쌀을 바닥에 다 쏟아버리고 신이 나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완전 대환장 쌀판이 되었지요.  

아기는 자기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서 뭐든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치카도 직접(하는 척), 물도 직접(먹여주려고 하면 엄마 손 쳐내기), 입에 간식을 넣어 주려 하면 꼭 손으로 받아서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등 온몸으로 ‘내가 할 거야!’를 외치지요. 또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먹고 싶은 음식 이름을 가장 먼저 깨치더니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치즈’와 ‘빵’입니다. 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김철수빵』도 ‘빵’ 소리를 듣고서는 좋아서 보다가 요즘 제대로 푹 빠져 보는 그림책입니다.

표지엔 ‘우리 집 베이커리’라는 부제와 함께 간판처럼 생긴 네모 그림 안에 ‘김철수빵’ 글자가 아주 빵빵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간판 위에는 화려한 조명에 감싸인 이 그림책의 주인공, 철수가 의기양양하게 거품기를 들고 있네요. 결의에 찬 눈빛에서 뭔가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데요. 표지를 넘기자 면지의 왼쪽면에는 철수의 말이, 오른쪽면에서는 엄마의 말이 가득합니다. 철수의 말 대부분은 ‘내가 하겠다’라는 내용이고 엄마는 대답으로 늘 ‘나중’을 기약합니다.

오늘은

엄마가 함께

빵을 만들자고 한다.

웬일이래?

생일이 이래서 좋은 거다.

그렇지만 오늘은 철수의 생일날. 엄마는 웬일로 나중을 기약하지 않고 철수의 바람을 들어 줍니다. 진짜 ‘내가’ 해 보겠다는 철수의 말에 엄마도 머리를 질끈 묶으며 결의를 다집니다. 자, 우선 빵을 만들려면 준비물이 있어야 하겠지요.

철수가 펼쳐 놓은 재료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가 익히 알던 제품 같지만 뭔가 조금씩 다릅니다. 메뚜기 딸기잼, 좌우목장, 큐트원 설탕, 백설공주 소금 등 원래 제품 이름을 아는 독자라면 슬그머니 웃음이 터지는 참신한 패러디가 가득하지요. 준비물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존재는 철수 곁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머리 묶은 엄마’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김철수까지 더하면 준비물 끝!

빵을 만들려면 가장 먼저 밀가루를 체에 곱게 걸러야 합니다. 탈탈탈 밀가루를 체에 거르던 철수는 끝도 없이 탈탈탈, 탈탈탈탈탈탈 계속계속 거릅니다. 그러자 밀가루가 담긴 볼과 함께 철수의 몸도 점점점 커집니다. 그런 철수와 볼을 받치던 엄마는 심지어 그림 밖으로 밀려나고 있고요. 음, 철수 엄마 멘탈 털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요?  

다음엔 설탕과 소금 넣기. 철수는 설탕 봉지에 들어가 달콤한 설탕을 쩝쩝 퍼먹고 소금도 허공으로 마구 뿌려댑니다.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철수의 모습, 쌀을 던지며 꺄르르 웃던 우리 아기가 생각나네요. 철수 엄마 화이팅...!

이제 미지근한 물을 넣고 이스트를 녹여야지요. 빵을 만들던 커다란 볼 속은 어느새 철수의 놀이터로 변신합니다. 그 속에서 실컷 놀던 철수가 엄마의 도움을 받아 반죽을 주무르고 버터까지 더했는데, 

이런!

갑자기 빵 반죽이 책 전체를 가득 채우며 무지막지하게 커집니다. 철수가 들이부은 이스트 때문일까요? 하지만 우리의 철수는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고사리손으로 주먹을 꼬옥 쥐더니 ‘뚜쉬뚜쉬’ 반죽을 찰지게 치대며 엄마와 열심히 동글동글 굴립니다. 그리고 접시 쪽으로 도망치려는 반죽에 초코칩을 마구마구 발사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피융피융"

블록버스터 영화 음향에 버금가는 소리를 입으로 내며 이야기의 절정으로 아기를 인도합니다. 그래서인지 철수가 주먹으로 반죽을 두드리는 '뚜쉬뚜쉬'에서 초코칩이 발사되는 '피융피융'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아기가 가장 좋아하더라고요.

초코칩을 맞은 반죽에 철수가 커다란 손으로 계란물을 바른 뒤 오븐을 얼른 닫습니다. 엄마가 계란물을 바를 때 쓰는 붓을 주려고 달려 오지만 이미 늦었죠. 손이 있는데 왜 도구를 쓰겠어요.

이제 오븐에서 맛있게 구워질 빵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엄마 얼굴이 어째 주말의 제 얼굴 같네요. 짧은 시간 동안 노화가 급진전한 것 같아요. 오븐에서 맛있는 땡! 소리가 나자 철수가 신나게 달려갑니다. 철수는 노릇노릇 익은 빵을 좋아하는 접시에 올려 딸기잼을 바릅니다. 그러고는 자신과 꼭 닮은 얼굴을 만들어 ‘김철수빵’이라 이름 붙이지요. 

그리고 언제나처럼 다시 엄마를 찾는 철수입니다(엄마 귀에서 피 나, 철수야).

엄마, 왜 그래?

빵 먹어.

왜겠니, 철수야...

『김철수빵』은 신나게 노는 철수 뒤를 지키는 웃기면서도 짠한 엄마가 조연인 그림책입니다. 즐겁게 노는 철수를 보며 깔깔 웃다가도 온 힘을 다해 철수의 안전을 지키며 필사적으로 빵 만들기를 돕는 엄마의 모습에 깊이 공감하고 감동하게 되지요. 엄마의 도움 덕분에 철수는 빵도 완성했고 자신감을 얻어서 설거지까지 하겠다고 나섭니다. 엄마는 거절하다가도 결국 철수 말을 들어 주겠지요. 엄마의 얼굴에 주름이 느는 만큼, 철수는 앞으로도 자기만의 ‘빵’으로 향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철수 뒤에는 언제나 빵빵한 뒷배인 엄마가 있어 줄 거고요. 철수의 즐거운 빵 만들기 놀이와 더불어 엄마의 숨은 분투가 빛나는 이야기, 『김철수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