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과유불급 산타 할아버지는 몇 번 오실까?
저는 문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앱 알림을 꺼 두는 편입니다. 하지만 올해 3월부터 결코 놓칠 수 없는 알람이 있었죠. 바로 '키 즈 노 트'. 아기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사진과 선생님의 짧은 코멘트를 담은 알림장이 오후 1시~2시 사이에 올라오거든요. 아이들이 낮잠에 든 시간을 틈타 선생님들께서 휴식 시간을 쪼개 올려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알림장에는 공지 사항 하나가 있었습니다.
12월 21일, 어린이집에 산타가 방문합니다!(체육 선생님께서 활약해 주실 예정이에요.)
산타 할아버지를 통해 전달할 선물을 아이 몰래 20일까지 전달해 주세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첫 산타와의 만남 소식에 아이보다 제가 더 두근거렸습니다. 선물은 무엇이 좋을까 고민이 되었는데요. 혹시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이 있을까 싶어 아기에게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복덩이,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 받고 싶어?"
"복덩이는 선물 받았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토끼 주셨어."
"!!!!"
여기서 토끼란, 작년 크리스마스에 엄마 산타가 주었던 첫 크리스마스 선물인 토끼 인형입니다. 아이는 아직 크리스마스마다 선물을 받는다는 개념이 자리하지 않았고, 이미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괜찮다는 대답이었죠. 사실 저는 공지 사항을 보자마자 고민이 되었거든요. 집에서 크리스마스 당일에 선물을 준비할텐데, 어린이집에서도 산타에게 받으면 이건 세계관 붕괴가 아닌지(나 T 맞네), 버릇이 나빠지지는 않을지, 또 너무 과해 선물 귀한지 모르지 않을지 등등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양육자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주변 선배들께 여쭤보니, 원래 이중 삼중 사중으로도 지출하는 때가 바로 크리스마스라고 말씀 주셨는데 그 이유에도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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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가 도둑처럼 살금살금 크리스마스 밤에 다녀가시기는 하지만, '도둑 산타'라니 선물을 안 주고 가져간다는 것일까요? 아기에게 산타 이야기를 읽어 주려고 펼친 책의 제목과 표지 색이 아주 도발적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그림책을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더 자주 읽어 주었어요. '남극'에 사는 도둑 산타 이야기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더 유효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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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니 산타가 아니라 장난꾸러기 요정들이 등장하는데요. 세 요정 모두 복면을 쓰고 아주 조심스럽게 어느 집의 굴뚝으로 들어갑니다. 집안은 고요하고 캄캄합니다. 식구들이 모두 외출하고 없는 사이, 복면 요정들은 무언가 적힌 종이를 확인하며 외칩니다.
"텔레비전이 두 대. 하나는 침실, 하나는 거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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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잇! 휘익!
집안을 비추던 그림은 어느새 원경으로 멀어지며 집 바깥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컴퓨터도 두 대.
체스판도 두 개.
장마철도 아닌데 우산은 왜 이리 많을까요?
뜨끔. 그림책 속 복면 요정들이 우리 집에 온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물건이 가득한 집안을 보여주지 않고 궁금하게 만드니, 오히려 독자들은 자기 집의 모습이 연상되어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됩니다(세어보니 우리 집엔 노트북을 포함해 컴퓨터가 4대, 우산은 7개나 있네요, 맙소사).
이제 요정들은 창고로 갑니다. 이 집 사람들은 손도 대지 않은 물건들이지만 말짱하게 작동하는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스쿠터가 가득합니다. 선반마다 인형들이, 뜯지도 않은 장난감 상자들도요. 요정들은 이 모든 물건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기뻐서 덩실덩실 춤도 춥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데요. 집주인이 온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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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 요정들이 달려가 문을 열자, 문밖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와 있습니다. 요정들을 잡으러 오셨군요! 아니, 그런데.
"얼른 가자, 얘들아. 꾸물거릴 시간 없어!"
아, 한패였군요. 다시 보니 산타도 복면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텔레비전, 컴퓨터, 체스판, 스쿠터, 한 번도 손대지 않은 테니스 라켓,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는 인형들을 '산타 레옹'이라 적힌 트럭에 차곡차곡 옮기기 시작합니다. 오직 별들만 깨어 있는 깊고 까만 밤, 임무를 완수한 요정들과 수상한 산타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부리나케 달아납니다.
다정한 산타 레옹 할아버지
레옹 할아버지 몰고 가는 트럭 속에는
너희가 쓰지 않은 장난감이
수천수만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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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남쪽에서 온 산타와 요정들이 이 물건들을 어디에 쓸지 짐작이 되는데요. 그런데 문득 남의 집의 물건을 이렇게 몰래 빼내 가도 될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그 누군가가 산타라고 해도 말이지요. 하지만 이야기의 결말에 깜찍한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이들은 진정한 도둑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온 손님이었던 것이지요. 요정들이 줄곧 들고 있던 하얀 종이의 비밀이 결말에서 밝혀진답니다. 이야기의 끝에 나오는 옮긴이이자, 시민 교육 활동가 신수진 선생님의 <옮긴이의 말>을 꼬옥 읽어 보세요. 발췌해서 소개하기가 너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고 필요한 이야기가 꼭꼭 눌러 담겨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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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부모님 물건인데 훔치러 오라고 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드는 독자도 있을 거예요. 이 방법이 최선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만, 일단 저는 찬성이에요. 창고나 다락방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쌓아 두는 것보다는, 잘 사용할 수 있는 새 주인을 찾아 주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어떤 의도인지 알고 나면 부모님도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은걸요. (중략) 무언가를 가질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나눌 때 행복하다는 어린이 앞에서 어른들의 욕심은 할 말을 잃을 거예요. 그건 이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겠다는 뜻이거든요. 어떤 원시 사회에서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준 사람에게 답례하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선물했다고 합니다. 선물에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래요. 좋은 물건은 사람들 사이를 돌면서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옮긴이의 말 - 나만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아닌, '정의로운' 크리스마스를 그려 보아요> 신수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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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도둑 산타클로스'는 북극이 아니라 남극에서 왔습니다. <옮긴이의 말>에 그 남쪽 나라의 의미가 자세히 담겨 있으니 꼭 읽어 주세요. 저는 산타의 트럭에 크게 적힌 '레옹'이라는 이름에 눈길이 갔는데요. 제가 아는 그 영화 속 주인공은 아닐 것 같아서 이 책의 원제를 찾아보니 <Père Léon>이었습니다. 프랑스어로 산타클로스는 'Père Noël'이지요. 북쪽이 아닌 남쪽에 사는 산타 '레옹'이라는 이름의 비밀을 모두 눈치채셨겠지요?
Père Noël
Père Léon
책장을 덮고 나서 집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그림책 속 집처럼 TV가 두 대씩 있지는 않지만, 분명 용도가 겹치는 물건들이 많았습니다(특히 텀블러.. 텀블러 그만 사겠습니다). 또 책 속 엄마 아빠와는 달리, 저는 물건이 없어져도 잘 모를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는 많은 물건과 짐을 어쩔 수 없다는 말들을 들어왔지만, 가끔은 책이든 장난감이든 놀거리가 너무 풍족해서 되려 하나하나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라떼는 말이야...). 아이 물건을 떠나서 제 옷장을 바라보다... 음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아범의 생일 선물로 대청소 및 물건 정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무슨 아범 선물이냐 하실 수 있지만, 그에게 이만한 선물이 없다는 것을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죠. 물론 올해의 마지막 날이 되어버린 지금, 그 선물은 우리우리 설날인 구정까지 유예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떻게 했냐고요? 저는 어린이집에 오시는 산타가 직접 주시는 선물 한 번으로 끝내야지 결심하고 아이가 좋아할 선물을 포장해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달했습니다. 그날 알림장에는 선물을 받고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의 사진이 있었고요(의외로 울지는 않았더라고요?).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복병은 여기저기에 있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또 오신다는 스포일러를 여러 어른께서 흘려버리시고 만 것이지요. 또 선물을 주러 오실 거라고 잔뜩 기대한 아이를 보고 고민하다 크리스마스 당일 선물은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준비했습니다. 물려받은 게 대부분이지만, 지금도 차고 넘치는 게 장난감인데 새것을 사려니 너무 낭비 같고, 아이 취향에 꼭 맞는 새것 같은 중고 장난감을 선물하는 것이 제 마음도, 받는 아이도 (나중에는) 기쁠 것 같았거든요.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렇게 큰 박스를 들고 왔을까?"
(아범 만세! 당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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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덩이 아범의 육아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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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니 지난번에 블랙프라이데이 특가로 주문했던 러닝화가 와있었다. 신발이 오면 항상 그랬듯이 복덩이랑 같이 언박싱을 했다. 그런데 복덩이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신발 있는데 또 샀어? 여기도 신발 있고, 여기도 신발 있고 그런데…” (나처럼 자고 나면 풀어야지...근데 왜 맨날 똑같이 생긴 신발 자꾸 사는 거야. 색도 같고 모양도 같은 거) 순간 복덩이가 물려받아서 주구장창 신고 있는, 찍찍이도 오래돼서 자꾸 떨어지는 헌 운동화가 눈에 보였다. 신발은 환불해야 할 것 같다.(사이즈가 안 맞아서 환불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
12월에 복직하며 일기를 거의 못 썼다. 바구니가 오늘 저녁 먹을 때쯤, 뉴스레터 마감이라면서 오늘 자정 전까지 복직 후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 하나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마감에 쫓기며 편집자의 독촉을 받는 작가의 마음이 어떤지 0.02% 정도 느껴본다.(나 꽤 유능한 편집자네 ^^^*) 복덩이 재우고 나와서 급히 쓰고 있다.
12월 1일, 1년 8개월 정도의 휴직을 끝내고 복직했다. 복직 한 달 전쯤 이메일로 복직원을 제출한 이후부터 마음이 뒤숭숭했다. 복직 후 복덩이의 어린이집 등하원 업무를 완수해 낼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바구니도 이제 등하원을 위해 회사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등 변화가 클 텐데 잘 적응할지 걱정이고, 이제 평일에 이모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복덩이도 바뀌는 환경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었다. 다행히 아직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해 가고 있다.(일 잘하는 아범은 등하원 교대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편 복직이 기대되기도 했다. 2년 가까이 복덩이의 아빠로만 지내며 어린이집 등하원 시키는 것 말고는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리도 없이 살다 보니, 회사원이라는 위치가 그리웠던 것 같다. 복직하는 날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명함 신청하는 것이었다. 물론 출근하고 한 달 정도 지난 지금은, 회사 다닌다는 게 어떤 거였는지 슬슬 다시 기억나기 시작하고 있긴 하다. 그래도 아직 회사라는 곳에 출근한다는 게 기분 좋다. 월급이 통장에 입금되던 날 특히 그랬다.(나도 기쁘다!!!)
휴직했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벌써 회사 생활이 많이 힘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복덩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 게 아쉽다. 휴직했을 때 복덩이한테 왜 화를 내며 혼내고 했을까 후회된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시기일 텐데, 좀 더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아빠의 모습으로 함께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못 하게 했던 것들이 떠오르며 그냥 하게 해줄걸, 아기인데 뭘 그렇게 교육시킨다고 못 하게 했을까 싶다. 10분쯤 뒤에 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지 않거나 해도) 큰일 나지 않는 집안일들, 옷 입히기, 양치시키기 같은 것들을 뭐 하러 근엄한 표정 지으며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했을까 싶다. 지나간 시간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자고 다짐해 본다.
오랜만에 출퇴근을 해보니, 장거리 출퇴근은 역시 힘들다. 1년 8개월 동안 혼자 가장 역할을 하며 돈 벌어온다고 힘든 출퇴근을 매일 하면서도, 퇴근하자마자 복덩이 케어해주느라 바빴던 바구니가 안쓰럽다. 나는 육아 힘들다고 나 힘든 것만 생각하고 바구니 힘든 건 생각 안 했었구나 싶다. 처음 육아 휴직 시작하고 전담 육아를 처음 해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육아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바구니가 이렇게 힘들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바구니한테 툴툴거리며 나 힘든 것만 이야기하는 거 정말 그만해야겠다.(약속^^*)
이번 주에도 복덩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엄마는 사랑하고, 아빠는 미워”라고 얘기해서 좀 슬프다.(그런 시기야.. 엄마를 환장하게 좋아하는 시기. 나도 혼자 있고 싶다~~~) 생각해 보니 바구니가 퇴근하는 길에 자주 과자나 작은 소품들을 가져와서, 복덩이의 관심을 끌었었다.(이상하게 퇴근길엔 지쳐서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사게 되더라고) 나도 퇴근할 때 복덩이의 호응을 얻을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지 생각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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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그림책 바구니 보러 가기
12월의 마지막 날, 그림책 바구니 잘 받으셨나요?
서른두 번째 바구니를 끝으로, 그림책 바구니 시즌 3을 종료합니다.
아범의 육아 일지를 보고 많은 응원을 남겨 주신 것도 늘 감사했습니다.
오늘로 아범의 육아 일지도 함께 종료합니다. (아쉬운 여러분 소리 질러~~~)
그림책 바구니 시즌 3에서는 세 살 아기와 함께한 시간을 담아 보았는데요.
시즌 4에서는 오늘이 지나면 네 살이 되는 아기와 그림책 이야기를 더 재밌게 그려 보고 싶습니다.
새해에 새 모습으로 단장하고, 꼭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림책 이야깃감을 많이많이 모아 볼게요.
구독자 여러분,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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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에 포함된 이미지는 출판사에서 공개한 부분만 사용하였으며 저작권은 작가님과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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