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괜찮아, 무서우면 다시 돌아오면 돼!
주말에 아기를 데리고 '챔피언'이라는 키즈 카페에 갔습니다(광고 아님 주의). 바깥은 너무 추워서 실내에서 에너지를 불태울 곳을 찾고 있었는데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게임기나 놀이기구가 없는, 몸을 다양하게 써 볼 수 있는 대형 놀이터였습니다. 들어가기 전 제가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는 그사이를 못 참고 얼른 놀고 싶어서 엉엉 우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안 오잖아! 으헝헝헝헝. 엄마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임뫄,,,3분도 안 지났어..)
처음 와 보는 대형 실내 놀이터에 압도된 저와 아기는 일단 탐색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기들을 위한 볼풀장, 각종 중장비 장난감이 가득한 편백나무방, 풀세트 주방 놀이 공간, 그리고 대형 정글짐까지. 토요일 낮, 살짝 많이 지친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들과 다르게 웅장해진 표정으로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활기가 흘러넘쳤지요.
탐색을 끝낸 우리 아기도 하나둘 놀이터 곳곳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여러 장애물을 통과하는 높은 정글짐은 아직 어렵겠다 생각해서 특별히 권하지 않았는데요. 형님들이 올라가는 걸 보더니 아기가 혼자 척척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 뭐예요. 어른들은 탈 수 없는 기구라 멀리서 지켜보는데 혼자 손에 땀이 났습니다. 그물을 잡고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거나, 외줄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과연 혼자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기우와는 다르게, 아기는 차분히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코스를 통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앞서가던 형님 어린이는 외줄 타기 부분에서 무섭다고 돌아오기도 했거든요. 우리 아기도 당연히 그럴 줄 알고, '괜찮아 무서우면 다시 돌아오면 돼!' 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기는 입을 앙다물고는 외줄 타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대단한 기세로 형님 어린이들이 돌진해 오고 있었습니다(어린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에 집중하면 주변이 절대 보이지 않는 때입니다). 세 명 정도의 형님들이 아기 뒤를 바짝 쫓아오자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뒤에서 빨리 오니 급하게 가다가 넘어질까 봐요. 제가 올라갈 수도 없어서 직원을 부를까 하다가 형님 어린이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기, 친구들아! 아기가 처음 해 보는 거라 그런데 조금만 천천히 가 줄 수 있을까?"
제 말을 들은 형님 어린이들은 나름 대로 속도를 줄여 보았지만, 그 기세가 쉽게 꺾일 리가요.
"복덩아, 천천히 가도 괜찮아!"
저는 아기가 무서워할까 봐 다독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OO아!(안 들림) 야!!! 천천히 가. 앞에 아기 있잖아!!"
"천천히~~~~ 천천히 가!!!!"
"앞에 사람이 있을 때는 천천히 가야 해~~~!"
형님 어린이들의 어머니 목소리가 양쪽에 들려왔습니다. 아 역시 어멈 맘 아실 이는 어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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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천천히 떨어지는 숲속에
종종종 작은 새, 불끈불끈 코끼리,
빠릿빠릿 토끼, 깔깔 원숭이,
그리고 나
천천히 도마뱀이 살아.
고운 색연필로 총총히 쌓아 올려 햇빛을 잔뜩 머금은 숲속. 평화로운 동네를 차분히 내려다보는 초록빛 친구의 이름은 '천천히 도마뱀'입니다. 그 이름처럼 느릿느릿 천천히 지내면서 성격도 모습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지요.
느릿느릿 천천히 지내니까,
보는 것도 많고
듣는 것도 많고
친구들 도와줄 시간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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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야, 나랑 꽃차 마실래?"
그네를 타던 천천히 도마뱀은 바삐 일하는 작은 새를 부릅니다. 지금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느라 마음 바쁜 작은 친구에게 쉼을 나눠 주려고요(지금 제 모습인 줄). 차분히 꽃봉오리에 앉아 꽃차를 나눠 먹는 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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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손으로 얇은 신발 끈을 묶느라 잔뜩 성이 난 코끼리에게는 구멍 난 잎사귀를 건넵니다. 코끼리는 그 잎사귀의 구멍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을 천천히 바라보고요. 그러자 화난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아.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이번에는 달리기를 잘하는 토끼가 실수로 경주에서 지자, 토끼 옆에 나란히 앉습니다. 토끼는 천천히 도마뱀이 곁에 있기만 해도 천천히 힘이 솟아나거든요. 천천히 도마뱀은 1등 메달처럼 귀하고 값진 꽃송이 장식을 친구에게 달아 주고요. 또 장난꾸러기 원숭이가 짓궂게 놀면 재미난 책을 같이 보자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합니다(여기까지 읽다 보니, 우리 천천히 도마뱀 육아왕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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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어서 친구들이 좋겠다고?
나도 친구들이 있어서 좋아.
천천히 도마뱀이 그런 것처럼, 친구들에게도 멋진 점이 참 많습니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온다는 소식에 작은 새는 미리미리 사과를 따자고 하고, 마음 씀씀이만큼이나 힘도 센 코끼리는 친구 모두를 등에 업고 씩씩하게 길을 걷습니다. 똘똘한 토끼가 집으로 가는 빠른 길을 찾고, 하늘이 어두워지자 원숭이가 친구들이 무섭지 않게 웃겨 줍니다. 그렇게 천천히 도마뱀과 친구들은 서로 돕고 도우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요.
날이 천천히 개도 괜찮아.
그래도 비는 꼭 그치고
하늘은 꼭 맑아지니까.
비가 와서 바깥에서 놀지도 못하고, 사과를 따느라 지쳤을 법도 한데 우리의 천천히 도마뱀은 늘 그랬듯이 더 좋은 쪽으로 마음과 생각이 향합니다. 비는 언젠가 그칠 테고, 우리에게는 우산도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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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첫 출간된 책이니, 이 책은 저를 위해 사 두었던 그림책이었어요. 윤여림 작가님과 김지안 작가님의 작품을 아주 좋아해서 두 분 이름만 보고 바로 이건 사야 해, 생각했던 책이였죠. 그림책을 보다 보니 천천히 도마뱀이 친구들에게 건네는 모든 말이 저에게 다정한 주문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출퇴근 시간에 틈틈이 속으로 읽기도 했었지요. 건강이 조금만 나빠지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자연스레 마음과 생각도 불행을 향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 천천히 도마뱀의 말을 되뇌며, 잘될 거야, 좋은 점을 더 찾아보자, 이것도 다 지나갈 거야 하고 생각하다 보면 마음의 방향을 조금씩 돌릴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아까 잠깐 천천히 도마뱀이 육아왕이라는 표현을 썼었지요? 천천히 도마뱀 님 완전 오은영 선생님 조선미 선생님을 뛰어넘을 인재 아닌가요? (도와줘요 도마뱀~~~) 이 그림책을 읽어 줄 때면 늘 천천히 도마뱀의 대사를 천천히 꼭꼭 씹어 더욱 아기에게 들려줍니다. 아기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기를 돌보는 양육자들에게 건네는 말 같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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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으면 엉엉 우는 아기를 위해, 일찍 출근하는 날에는 그날 볼 그림책과 작은 쪽지를 두고 나옵니다.
아기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저를 위해서이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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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모든 나이의 독자가 보기 좋지만, 『괜찮아, 천천히 도마뱀』은 보드북에서 양장 그림책으로 넘어가는 시기인 세 살부터 다섯 살 어린이에게 아주 좋은 책이 될 거 같아요. 글과 서사도 이 연령대의 어린이들에게 안성맞춤이지만, 그림도 어린이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고 작은 발견을 통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도록 김지안 작가님이 숨겨 두신 재미가 있거든요. 꽤 여러 친구들이 등장하지만 캐릭터마다 몸의 크기와 모습의 차이가 선명하고 다음 장면에는 또 어떤 친구들이 나올까 기대하며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기대보다 멋진 그림이 기다리고 있고요. 그림이 정말 너-무 아름다워서 한 번 보시면 무조건 소장하실 수밖에 없을 거예요.
세 살이 된 아기는 요즘 부쩍 짜증과 화와 눈물이 많습니다(원래 그렇다죠?). 'Terrible Twos'라는 말도 있는 걸 보면 정말 만국 공통인가 봐요. 하지만 이 시기의 아기들이 또 그렇게 환장하게 이쁩니다.. 아주 녹아요(이건 전쟁 같은 사랑).
아기는 아직 대근육과 소근육이 발달 중이라 머리로는 엄마 아빠처럼 상상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아 뭔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주 울고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저는 그럴 때 "천천히 해 봐." "천천히 도마뱀처럼 생각해 볼까?" 하고 말해 줍니다(어멈도 차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당장 흥분이 가라앉지는 않더라도, 자주 보았던 그림책 속 이야기가 아기에게 남아 있을 테니까요. 아기가 살면서 이 이야기를 자주 꺼내 보면 엄마로서 무척 기쁠 것 같아요. 우리가 천천히 오래오래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면서요.
아가야,
천천히 하다 보면 다 잘될 거야.
같이 귤 먹을래?
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어 줄게.
우리 그림책 볼까?
이리 와, 엄마가 안아 줄게.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자라 줄래?
언제나처럼 건강하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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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덩이 아범의 육아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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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덩이는 최근 들어 자신이 어린이집 가 있는 동안 아빠가 뭐 하는지에 대해 자주 궁금해한다. 오늘도 "어린이집 가 있는 동안 엄마는 일하고, 아빠는 뭐해?”라고 물어봤다. 놀고먹는 백수 아빠 이미지가 되고 있나 걱정이 되어, “아빠는 집안일도 하고, 책도 읽고, 나중에 출근해서 일할 준비도 하고 하지.”하고 대답했다. 어제 혼자 피자 시켜 먹으며 마블 영화 보고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뜨끔했다.(마블 재밌지. 피자도 맛있지. 그럼그럼) 앞으로는 복덩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오늘은 혼자서 관악산 등산을 하고 왔다. 서울대 관악 수목원에 복덩이랑 같이 가볼 만한지 답사할 겸 가봤는데, 지금은 미개방 기간인 것 같았다. 등산 끝나고 하산하는 방향으로는 통과할 수 있게 돼 있어서 수목원을 살짝 살펴봤다. 요즘은 날씨가 추우니 어디 야외에 놀러 가기가 애매하다. 등산하는 동안에도 꽤 추웠다.
트레일러닝 좀 해봤다고 등산을 우습게 봤는데, 힘들었다. 처음에 능선까지 올라갔는데 커다란 바위가 눈앞에 나타났다. 설마 이걸 올라가라는 건가 하면서 조금 올라갔다가 무서워서 다시 내려왔다. 암릉 옆에 우회 등산로가 있어서 그쪽으로 지나갔다. 무서워서 다음 암릉들도 모두 우회로로 지나갔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암릉을 타넘는 재미로 능선을 따라 등산들 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참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다음에 암벽 등반 배워서 다시 가봐야겠다(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트레일러닝으로 일단 세계 대회 정복해 보자!).
길을 찾기도 힘들었다. 바닥에 낙엽이 쌓여서 길이 명확히 안 보이기도 했고, 관악산이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다양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불성사를 지나서 내려오다가 길이 갑자기 없어져서 길을 찾기 위해 정말로 산속을 헤집고 다녔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헤치고 쓰러진 나무를 뛰어넘으며 길을 찾다가, 결국 원래 오던 길을 거슬러서 불성사까지 다시 돌아갔다. 그 후 다른 길을 찾아서 잘 내려올 수 있었다. 길을 잃고 산속에 고립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고 막막했는데(사실 관악산에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럴 때는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란 걸 깨달았다.(명쾌!)
육아일지인데 내 등산 이야기만 했네. 3일 뒤에 복직 첫 출근일이다.(아범 복직해요 여러분~~~) 복덩이가 잘 적응할지, 엄마 아빠 다 출근하면 어떻게 지내게 될지 걱정이 된다. 그러면서 복덩이 등하원을 바구니랑 나의 출퇴근 일정을 잘 맞춰가며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그러면서 출근해서 내 회사 생활은 어떻게 될지도 걱정이고, 다 걱정이다.(아범, 천천히 알지? 다 잘될 거야. 아범 화이팅! 그리구 복직 초기엔 일이 꽤 재밌을 거야. 내가 일을 하잖아? 그럼 결과물이 나온다? 육아와는 또 다른 일의 매력 잔뜩 즐기고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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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그림책 바구니 보러 가기
11월의 마지막 날, 그림책 바구니 잘 받으셨나요?
요즘 진짜 춥죠!
추운 날에는 마음을 따끈하게 데워 주는 그림책을
귤 까먹으며 보면 얼마나 좋게요?
저는 12월 마지막 날에 다시 인사드릴게요.
올해를 끝으로 그림책 바구니 시즌 3를 종료하고,
천천히 천천히 다음 시즌을 준비해 볼게요.
모두모두 따뜻한 12월 보내셔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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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에 포함된 이미지는 출판사에서 공개한 부분만 사용하였으며 저작권은 작가님과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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