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좋은 게 참 많지

올해 봄 어느 날이었습니다. 태어나 두 번째 봄을 맞은 아기가 집 근처 공원에서 걸음마 연습에 한창이었지요. 처음에는 많이 넘어지곤 하더니 어느새 아장아장 잘도 걷기 시작했습니다. 평일 낮 공원에 나가면 어린아이들과 보호자, 그리고 어르신들을 자주 마주칩니다. 여느 날처럼 공원 의자에 앉아 볕을 쬐고 계시던 한 어르신께서 아기를 보고는 덕담을 건네셨습니다. 

“아이고, 예쁘다.

봄이 되니 세상에 나왔구나.

이 세상에 좋은 게 참 많지?”

아기보다 수십 년 먼저 태어난 어르신의 말씀에는 처음 보는 아기를 향한 선의와 따뜻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좋은 게 참 많다’라는, 살아 보니 그렇다는 말씀이 아기와 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요. 

걷기를 완벽히 습득한 아기는 말도 못 하게 보드라웠던 뒤꿈치가 꽤 야물어졌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참견하며 되똥되똥 열심히 걷는 아기 손을 잡고 나가면, 언제나 아기를 향한 수많은 눈인사와 ‘예쁘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물론 저를 향한 말은 아닙니다.(ㅠㅠ) 

아기를 낳은 뒤 제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도 아마 ‘예쁘다’일 것 같습니다. 아기는 점점 예쁜 짓을 골라 하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너-무 예쁩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저도 제 자식이라 그런지 수시로 예쁜 점은 쏙쏙 잘도 찾아내지요(저는 꽤 미감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그림책 편집자입니다,,후후). 정말 예쁘다는 게 뭔지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되게 예쁘다.” 

수업을 듣다 말고 

김경희가 나를 보며 말했어.

여자아이의 이름은 김경희인가 봅니다. 경희가 말했지요. 되게 예쁘다고. 그냥도 아니고 ‘되게' 예쁘다고 말입니다. 이 장면에서 두 아이의 뒷모습이 커다랗게 책의 한 면씩을 차지합니다. 둘의 표정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어쩐지 더 마음이 간질거립니다. 남자아이의 귀는 아까보다 확실히 붉어졌고 머리까지 그 붉은 기가 퍼졌습니다. 경희의 왼쪽 뺨도 약간 발그레합니다. 

아이는 경희가 너무 작게 말해서 처음엔 자기한테 하는 말인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내 깨닫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내가 예쁘다고?”

예쁘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학교에서 줄을 서다가도, 급식을 먹다가도,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김경희의 ‘예쁘다’라는 말이 불쑥불쑥 떠오릅니다.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한쪽 눈썹이 은근하게 올라가며, 발끝은 살랑살랑~ 기분 좋은 티가 숨겨지지 않는 아이의 표정에서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요?

나더러 예쁘다던 김경희는 색연필도 빌려주지 않습니다. 색연필도 안 빌려주는데 김경희가 나를 좋아할 리는 없고,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입니다. 

그럼,

내가 정말

예쁘다는 뜻일까?

거울 앞에 선 아이는 자신의 예쁜 점을 찾다가 종 친 것도 잊을 만큼 스스로에게 흠뻑 빠집니다. 할머니도 볼 때마다 잘생긴 내 새끼, 하시니 내가 예쁘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렇게 생각하자 밥맛도 더 좋아집니다. 예쁘다는 게 뭔지, 무슨 뜻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말이라는 건 분명하기에 아이는 축구를 하러 가서도 내내 행복한 기분에 몸을 맡깁니다. 주홍빛으로 온 세상이 물든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노을이 아주 예쁘다는 말을 하십니다. 그때 아이는 깨닫게 되지요. 

맞아.

나도 예쁘구나.

마음이 아주 간질거렸어.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어. 

아이는 그날 밤 잠도 잘 자고 개운하게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합니다.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보는 아이의 얼굴 좀 보세요. 눈동자는 반짝반짝 총기가 돌고, 양 볼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가득 묻어납니다. 제 눈에도 아이는 어제보다 더 예뻐졌습니다. 이렇게 아침이 오는 게 즐겁고 행복했던 날이 또 있었을까 싶은 표정입니다.  

아이는 그런 마음을 안고 학교에 도착해서 김경희에게 아침 인사를 하러 다가갑니다. 지금까지 경희에게 먼저 인사한 적은 없었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는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습니다.

“와, 되게 예쁘다.”

그때 김경희와 송미주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옵니다. 아이는 그 얘기를 듣고는 순식간에 바깥으로 뛰쳐나갑니다. 얼른 교실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귀와 얼굴이 새빨개진 채 달려 나간 곳에서 아이는 커다란 꽃나무를 마주하게 되지요. 그러자 부끄럽고 속상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 흩어집니다. 이렇게 예쁜 걸 보니 기분이 좋아졌거든요. 

 『내가 예쁘다고?』는 저를 자꾸만 까마득한 어린 시절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과 같은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경희와 송미주, 그리고 까까머리 아이가 꼭 제 친구였던 것 같고 예쁘다는 칭찬에 며칠을 곱씹으며 행복했던 그 마음이 제 어린 날의 어딘가에도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새 저도 아이들이 노는 교실로, 예쁘다는 말을 들은 까까머리 아이의 마음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잔잔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책이 가진 매력 덕분이었지요. 

이야기를 모두 읽은 다음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보니 김경희의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는지 알게 되어 살포시 미소가 지어집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언젠가 비슷한 오해를 하고 나중에 부끄러웠던 기억도 나면서요. 하지만 예쁘다는 말은 언제나 - 얼마나 - 기분 좋은 말인지요. 아이에게 짧지만 충만했을 그 시간이 참 귀하디귀하게 느껴집니다. 

제 아기는 요즘 자주 여자아이로 오해를 받고는 합니다. 누나들의 옷을 많이 물려받기도 했고 배냇머리를 그냥 길러둔 탓에 놀이터에 나가면 다들 여자아이로 보더라고요. 그래서 예쁘다는 말을 더 자주 듣기도 합니다. 저는 이 그림책의 주인공이 남자아이인 점이 참 좋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남자아이에게 ‘예쁘다’는 말을 아끼곤 하니까요. 예쁘다는 말이 성별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향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또 저부터도 예쁜 걸 보면 꼭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다짐해 보고요.  

 『내가 예쁘다고?』는 작고 귀여운 오해에서 시작된 커다란 기쁨과 행복을 그린 시인의 소담하고 담백한 이야기에 어린이의 다채로운 감정과 행복한 기분을 그림으로 느낄 수 있는, 분홍 꽃처럼 어여쁜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보고 나니 아이와 외출할 때마다 마주친 선의로 가득한 어르신들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도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듣고, 예쁜 걸 보며 기분 좋은 나날들을 보내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그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봅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미처 예고하지 못했던, 이 책의 편집자님인 모도리 님을 모시고 그림책 이야기를 더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도리 님, 인터뷰에 응해 주시고 정성껏 답변을 보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섭외를 도와주신 이예스 편집자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해요!). 모도리 님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 그림책을 꼭 한 번 다시 살펴보시길 추천합니다. 오늘 글과 그림책이 좋으셨다면 아끼는 이에게 그림책 한 권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예쁘다고?』 사러 가기

"너도 예쁜 사람이야.”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 모도리 

🐰 안녕하세요 모도리 님, ‘그림책 바구니’ 구독자님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

📷 안녕하세요? 저는 도서출판 봄볕에서 책을 만들고 있는 모도리라고 합니다. 어린이책을 오랫동안 만들어왔습니다. 지금은 그림책과 동화책, 청소년소설 등 다양한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어요.

🐰 『내가 예쁘다고?』  책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 『내가 예쁘다고?』는 친구가 던진 ‘되게 예쁘다’라는 말 한마디 덕분에 내 안의 예쁜 점을 찾아 나가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그림책입니다. 결국 나의 예쁜 점도 발견하고 실제로 예쁜 존재가 뭔지도 알게 되어요. 

🐰 황인찬 시인님은 처음으로 그림책의 글을 쓰셨어요. 어떻게 시인님과 함께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 황인찬 시인이 대학원 수업에서 그림책 원고로 쓴 글이었어요. 시가 아닌 그림책 원고로 처음 쓴 글이죠. 그 수업을 가르쳤던 아동문학평론가 김서정 선생님이 연결해 주셔서 황인찬 시인의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 주인공 아이의 설렘과 기쁨, 부끄러움 등 다채로운 감정을 독자도 한눈에 알 수 있게 그린 이명애 작가님의 그림이 정말 빛나는 책이에요. 특별히 그림으로 보여 주고자 애썼던 장면이나 그림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주인공 남자아이가 자기 안의 예쁜 점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장면입니다. “코도 오똑하고, 눈도 초롱초롱하고,”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아이 표정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이명애 선생님은 처음에 김경희가 “되게 예쁘다.”라는 말을 뱉을 때 두 아이의 뒷모습이 가장 그리기가 어려웠다고 해요. 뒷모습에 미묘한 감정을 담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이니까요. 

🐰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인 두 작가님과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드셨어요. 어떤 점이 특별했나요? 

📷 그림책 작가와의 작업은 많이 해봤는데 시인과의 작업은 처음이었어요. 시인이라서 당연히 그렇겠지만 문장 하나, 낱말 하나 고치고 새로 쓰는 데 매우 세심했어요. 황인찬 시인 덕분에 토씨 하나에도 뉘앙스나 결, 호흡이 다르다는 걸 그때그때 느끼면서 작업할 수 있었어요. 

🐰 김경희, 송미주 등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마치 내 친구 이름처럼 친근하고 익숙해요. 요즘 아이들의 이름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에요. 인물들의 이름이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북토크 때 어느 독자분이 황인찬 시인에게 물어봤어요. 김경희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요. 황인찬 시인은 당신이 쓰는 모든 글에(시 포함) 등장하는 이름은 주위 친구나 지인의 이름을 빼고 만든다고 해요. 친구나 지인 이름을 쓰게 되면 그 사람의 어떤 느낌이 부여되어서 안 그러는 게 좋다고 생각한대요. 김경희는 평범하고 튀지 않은 이름이에요. 요즘 아이들 이름보다 황인찬 시인이 어릴 적에 흔히 접했던 이름이 아닐까 싶어요. 

🐰 ‘예쁘다’라는 말은 듣는 이를 참 행복하게 합니다. 모도리 님을 행복하게 하는 말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요즘에는 ‘봄볕 책이 참 좋더라’라는 말이에요.

🐰 『내가 예쁘다고?』라는 제목을 그림책의 제목으로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다른 후보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표지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세요. 

📷 『내가 예쁘다고?』의 제목은 황인찬 시인이 지은 제목이에요. 그리고 다른 제목 후보는 없었어요.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부터 이 그림책 제목은 ‘내가 예쁘다고?’라고 생각했어요. 이견이 전혀 없는 제목이었죠. 표지 그림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디자이너와 이명애 선생님과 의논한 끝에 교실에서 김경희가 ‘되게 예쁘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앞에서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김경희는 창밖을 보고 말하는데 남자아이 시선은 김경희에게 가 있어 살짝 헷갈리게 보이는 것이 의도였어요. 그리고 ‘내가 예쁘다고?’라는 제목은 김경희가 하는 말일 수도 있고 남자아이가 하는 말일 수도 있게 이중적으로 보이게끔 만든 거죠. 

🐰 표지만 보았을 때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라고 추측했어요. 남자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로 결정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 황인찬 시인이 처음 보여준 원고의 주인공이 남자아이였어요. 여자아이가 ‘예쁘다’라는 말을 듣는 설정은 평범하잖아요. 남자아이가 ‘예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궁금증과 호기심 등이 더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당연히 남자아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거죠. 

🐰 예쁘다는 건 뭘까요? 편집자님이 요즘 예쁘다고 생각하시는 것들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저는 제 자식이요).

📷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예요. 저의 강아지 역시 ‘예쁘다’는 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 편집자님은 어린 시절 어떤 그림책을 가장 좋아했나요?

📷 저의 어린 시절에는 그림책이 거의 없었어요. ^^;;

🐰 『우리가 잠든 사이에』 (2020, 봄볕)를 기점으로 봄볕 출판사의 그림책이 더욱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또 독자들의 사랑도 듬뿍 받는 것 같고요. 그림책을 기획하실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점적으로 두시는지 궁금해요. 

📷 글과 그림이 얼마나 조화로운지, 그리고 그 그림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봅니다. 인권, 환경, 어린이다움, 성인지 감수성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내가 예쁘다고?』 를 보게 될 어린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 “너도 예쁜 사람이야.”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 다음 그림책으로 어떤 책을 편집 중이신가요? 짧게 소개 부탁드려요.

📷 『더 이상 아이를 먹을 수는 없어!』의 작가 로이크 프루아사르의 그림책 『나의 오두막』을 편집 중이에요. 나만의 오두막이 있는 사람이 오두막에서 보내는 즐거운 한때를 그린 그림책이죠. 하지만 그림책을 다 읽고 다시 읽으면 나만의 오두막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요. 누구와 함께 쓰는 오두막일지, 책이 나오면 확인해 보세요.

🐰 끝으로 요즘 가장 재미나게 읽은 그림책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 최근에 본 그림책으로는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 라는 그림책이에요. 두마리토끼책이라는 출판사에서 ‘작지만 엄청난’이라는 시리즈를 내고 있는데요, 원자, 바이러스, 미세플라스틱 등을 다루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을 위한 지식그림책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고민하고 있다면 충분히 교본이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가 예쁘게 오는 요즘입니다 :) 다음 그림책으로는 현이지 작가님의 『혼자 갈 수 있어!』와 만날 예정이에요. 요즘 저의 아기가 홀딱 빠진 그림책으로, 언젠가 아이가 홀로서기를 하는 날을 상상해 볼 수 있었던, 단단하고 든든한 아이의 마음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도 이 책의 편집자님인 위모씨 님을 모시고 작은 인터뷰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림책을 보시고 편집자님께 궁금하신 게 있다면 많이많이 글을 남겨 주세요! 그럼 다음 그림책 바구니는 7월 13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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