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 

옹알이를 열심히 하던 아기 입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말은 역시 ‘엄마’였습니다. 그다음은 ‘아빠’였고요. 다음 말은 무엇일까 기대하며 아기 입을 바라보는데, 아기가 드디어 입을 뗐습니다.

“이거!”

집게손가락만 펼쳐서 원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게 된 아기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이거 이거 이거!'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었습니다. 아기와 공원에 나가면 어르신들께서 자주 반갑게 인사를 해 주시는데, 아기는 인사에 화답하고자 어르신들께도 집게손가락을 고이 펼치며 새로 터득한 말을 외치곤 합니다. 

“이거!”

그럼 저는 그 손가락을 고이 접으면서 이렇게 알려주지요.

“이분~ 사람에게는 이분이라고 하자.”(자식아…)

아기가 ‘이거’ 다음으로 체득한 말은 뜻밖에도 맘마가 아닌 ‘우아’입니다. 아기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책인 『눈아이』 덕분입니다. 그림책 속 주인공 눈아이에게 처음 눈과 입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내뱉는 말이 바로 ‘우아’라는 감탄사거든요. 눈아이가 처음 본 세상은 ‘우아’ 그 자체였겠지요. 이 세상에 처음 눈을 뜬 순간 느꼈을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의 아기가 ‘우아’ 다음으로 한 말은 무엇일까요?

네,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깨우친다는 마법의 그 말, 매일매일 엄마 귀에서 피 나게 해 주겠다는 바로 그 말…

“아니야!”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눈아이』 속 한 장면이 있나요?

눈아이가 '따뜻해서' 우는 장면이요. 아이가 따뜻하게 대해 주니까 눈아이가 녹아 버리는데 그게 우리 마음 같기도 해서요. 우리도 누군가의 따뜻한 말 앞에서 울컥 무너져 버릴 때가 있으니까요. - 안녕달 🔗채널 예스

뽀득 뽀득 뽀득 뽀득 뽀득

포근포근 겨울눈이 온 세상을 덮은 숲속, 아이는 학교 가는 길에 제 몸만 한 눈덩이가 움직이는 걸 본 것 같습니다. 

“음……잘못 봤나?”

수업 시간에도 자꾸만 아까 본 눈덩이가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가장 먼저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는 다시 눈덩이를 마주칩니다. 이번엔 확실히 봤습니다. 분명히 눈덩이가 움직이고 있어요.

아이는 장갑 낀 손으로 눈을 꼭꼭 뭉쳐 눈덩이의 손과 발을 만들어줍니다. 그러자 눈덩이가 신나게 달려가다가 그만, 나무에 온몸을 부닥치고 말지요.

아이는 눈덩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장갑을 벗습니다. 집게손가락으로 눈덩이 얼굴에 눈을 그리고 양손으로 길게 반원을 그려 웃는 입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자, 

"우아"

눈아이가 태어납니다. 

눈과 입을 얻은 눈아이의 입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말은 감탄사였습니다. 첫눈을 발견했을 때 "우아, 눈 온다!" 하고 우리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처럼요. 

뜻밖의 기쁨, 마음에 행복을 지피는 일을 마주했을 때 저절로 나오는 투명한 말이지요. 

눈아이에게 “안녕!” 인사를 건넨 아이는 눈아이의 귀에 따스한 말을 건넵니다. 그러자 아이의 입김 덕분에 눈아이의 귀에 작은 구멍이 생깁니다. 이제 눈아이에겐 귀도 생겼습니다.

아이는 배고픈 눈아이를 위해 눈을 꼭꼭 뭉쳐 눈빵을 만들어 줍니다. 눈아이에게는 맛있지만, 아이에게는 차갑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이 그저 재미있어 둘은 꺄하하하 웃지요.

그렇게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눈아이를 만났다.

아이가 눈아이의 손을 먼저 잡지만, 따뜻한 온기 때문인지 손이 녹아내립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장갑을 끼고 손을 잡으면 되니까요. 두 아이는 눈 덮인 언덕을 오르며 토끼를 쫓아갑니다. 하늘에선 하얀 눈이 계속 내리고, 아이만 했던 눈아이는 점점 몸과 키가 쑥쑥 자라납니다. 

눈아이는 차갑고 아이는 따뜻합니다. 둘의 온도는 이렇게나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두 아이는 다른 온도를 둘만의 방법으로 극복하고, 둘만이 할 수 있는 놀이를 즐깁니다. 그런데도 두 아이의 우정에는 계절의 변화라는 고비가 찾아옵니다. 책의 뒤표지 그림을 보면 겨울을 뒤로한 봄의 풍경이 펼쳐지는데요, 표지에서부터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거라는 걸 암시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어디엔가 반드시 있을 친구를 찾아 헤매던 아이 앞에 눈아이는 다시 찾아옵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계절은 돌고 돌아 언제고 겨울은 다시 오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친구들에게 왜 ‘눈아이’의 존재를 비밀로 할까요? 친구들 앞에서는 눈아이와 잡은 손을 슬그머니 빼기도 하고, 여러 계절을 지나 매일 눈아이의 존재를 찾으면서도 친구들에게는 무얼 찾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눈아이의 존재를 믿어 주지 않을까 봐서일 수도 있고, 눈아이는 나만 알고 싶은 존재였을 수도 있습니다. 소중한 단짝 친구가 내가 아닌 다른 친구와 논다면 어쩐지 속이 상할 거 같기도 하거든요.

안녕달 작가님의 그림책은 만화처럼 분할된 그림면이 특징입니다. 시원하게 그림책의 네모난 공간을 펼침면 가득 채우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네모난 칸을 여럿 나눠 채운 그림으로 인물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연속으로 보여 줍니다. 분할 그림면은 왼쪽면과 오른쪽면을 오가며 긴 호흡의 이야기에 다양한 볼거리를 주기도 합니다. 

저의 아기는 ‘우아’하고 눈사람이 처음 생긴 입으로 말하는 장면을 특히 좋아합니다. 또 ‘꼭꼭 숨어라~' 노래를 부를 때는 까르르 웃지만, 눈아이가 사라지면 구슬픈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다시 나타난 눈아이의 얼굴이 책 전체를 가득 채울 땐 눈아이와 똑같은 표정이 되어 책에 마구 입을 맞추고 끌어안기도 하고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친구가 아기도 무척 반가운가 봅니다. 

아기에게 요즘 엄마는 자고 일어나면 홀연히 사라져 저녁을 먹을 때쯤 나타나 한 시간 함께 놀아 주고 싫어하는 양치를 시키고, 싫어하는 잠을 재우는 사람입니다.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었던 엄마를 못 찾겠다 싶을 때 오두방정을 떨며 퇴근의 기쁨을 만끽하는 엄마가 나타나지요. 엄마가 홀연히 사라지지만 언제고 눈아이처럼 다시 돌아오는 존재라는걸, 그래서 엄마가 일하는 시간에도 안심하고 잘 놀고 잘 지내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꼭꼭 숨었다가 ‘반드시’ 퇴근할 테니까요. 

저는 출판사에서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데, 요즘 편집 중인 그림책의 주인공은 임금님의 명령을 받고 머나먼 이웃 나라로 심부름을 떠나는 예페라는 이름의 인물입니다. 예페는 길 위에서 만난 다친 다람쥐 아빠, 아이가 여덟인 돼지 엄마, 부축이 필요한 염소 할아버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임금님의 심부름이라는 아주아주 중요한 일이 있지만, 임금님보다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도 길 위에 많으니까요. 『눈아이』 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항상 눈아이가 ‘따뜻해서’ 운다는 말이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작은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그 따뜻한 온기가 아기와 저의 마음속에도 오래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아기가 제가 일하는 회사에 짧게 견학을 왔습니다. 사랑으로 맞아준 동료들 덕분에 환대를 가득 받고 실컷 놀다 왔습니다. 아기는 제가 일하는 자리에도 앉아보고, 키보드를 치며 일도 하고, 본부장님께 손가락질도 하며 사무실 곳곳을 구경했습니다. 아침이면 사라졌던 엄마가 이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아주 조금은 알았겠지요?

다음 그림책 바구니에는 그런 엄마를 회사로 집으로 실어 날라 주는 지하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김효은 작가님의 『나는 지하철입니다』를 보면서 효은 작가님이 그림을 그린 『기찬 딸』도 함께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럼 2주 뒤 6월 1일에 다시 만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