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보 심은 데 먹보 난다

조리원에서 지낼 때 신생아실 선생님들께서 하나같이 제 아기에 관해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복덩이는 잘 먹는 아기예요.”

도대체 얼마나 잘 먹었던 걸까요. 한두 분도 아니고 여러 선생님께 이 말을 들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조리원에 있는 내내 다른 아기 엄마들이 수유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거든요. 제가 먹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것도 유전이 되는구나 싶고요.

저의 아기는 분유를 타서 병을 흔드는 순간,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고 빨리 달라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생우유를 먹는 지금도 컵에 우유를 따르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고요). 분유를 먹던 시절엔 항상 남김없이 먹었고, 다 먹은 젖병을 빼면 꼭 울었습니다.

다른 아기들은 배부르거나 먹기 싫으면 혀로 젖병을 밀어낸다던데 그런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요. 혹시 모자라나 싶어 한 병을 더 주면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는 것 같았지요(자식아 ㅠㅠ). 몸무게가 평균 수준으로 느는 것을 확인하며 수유량을 계속 늘렸지만, 아기는 늘 부족하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곤 했습니다.

모유나 분유처럼 액체만 먹던 아기들은 통상 6개월 즈음이 되면 고형식인 이유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처음 먹는 이유식은 거의 액체에 가까운 미음이지만요.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잘 먹는 아기들도 정체기가 온다는 얘기부터 첫 고형식 경험이 앞으로의 식습관을 결정한다는 말 등 아기 인생의 중요한 한때가 시작되다 보니 이유식에 관한 정보와 주의사항은 차고 넘쳤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전 큰 고민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 자식, 어쩌면 이유식으로 돌을 삶아 줘도 엄청나게 먹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역시 어멈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맨 처음 죽이라는 걸 먹게 된 아기는 태어나 처음 음식을 빨아서 마시지 않고 스스로 삼키는 경험을 해봅니다. 한 며칠 먹는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더니(턱으로 줄줄 새는 아까운 죽) 어느 순간 아기 참새처럼 쩝쩝 잘도 받아먹었습니다.

아기에게 단호박을 처음 주었던 날이 기억납니다. 제가 먹어도 다디달긴 했는데, 아기가  처음 한 입 먹더니 갑자기 말문이 터지더군요.

“엄마! 엄마!!! 엄마!!!!!(= 더 줘! 더 줘!!!! 더 주라고!!!!!)”

너 말할 줄 알았구나…?

쌀밥이 소복이 쌓인 밥공기를 앞에 둔 어린이의 표정이 두근두근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군가 막 냄비 뚜껑을 열기 직전 순간 포착된 표지 그림은 냄비 속에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있을지 상상하게 하지요. 아, 김효은 작가님의 사랑스러운 인물 그림은 언제나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주인공 어린이는 다양한 음식을 먹는 다양한 이들을 관찰합니다. 감을 맛있게 먹는 새, 호시탐탐 오이를 노리는 고양이 아노, 엄마가 주는 물을 맛있게 먹는 사랑초, 그리고 겨울엔 아무것도 먹지 않는 ‘나 선인장’까지.

갓 돌이 지나 보이는 동생 연우는 뭐든지 다 먹고 싶어 합니다. 옷에 달린 단추까지도요. 이때는 진짜 뭐든지 다 입으로 가져가지요. 엄마는 김치 없이는 못 살고, 아빠는 뜨거운 설렁탕이 아주 좋대요(저도요!). 나는 스파게티가 제일 맛있고요. 후루룩 삼키면 몸 안에 스파게티처럼 긴 길이 생길 것 같거든요.

본격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마주한 어린이의 즐거운 상상이 시작됩니다. 기다란 국수를 먹으면 국수처럼 머리가 길어졌으면 좋겠고, 국수 먹으면 오래 산다는 얘길 듣고 “그럼 할머니랑 친구 되는 거야?” 하며 순식간에 긴 머리로 쪽을 진 할머니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발레 할 때 입는 튀튀 스커트는 바스락바스락 꼭 파이 같고, 오빠가 좋아하는 피자는 크리스마스트리 같대요. 오빠가 나온 화장실은? 여러분의 상상에 그 맛을 맡기겠습니다.

어린이의 가장 귀여운 한때를 정말 너무너무 사랑스럽게 그리기로 정통한 김효은 작가님의 그림은 보기만 해도 너무 좋아서 마음이 간질간질합니다. 음식 그림은 또 어떻고요. 이 그림책을 보다가 피자를 몇 번이나 배달시켰는지 모릅니다. 검은 콩테로 그린 부드러운 선에 인물에는 포인트 색상을, 음식에는 맛있는 빛깔을 더해 등장인물과 등장 음식이 많아도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시각에서 쓴 글은 이 세상의 맛을 즐기고 느끼는 어린이의 기쁨이 전해집니다. 곳곳에 독자들이 발견하길 바라는 유머도 많이 숨어 있어요. 겨울엔 아무것도 안 먹는 ‘나 선인장’을 따옴표로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그림을 들여다보니, 아! 선인장 모양이 한글 ‘나’처럼 생겼더라고요. 이런 게 그림책을 보는 묘미지요. 혹여 다른 해석이 있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재미있을 거고요.

어린이들은 가끔 세상이 정해 놓은 단어의 의미를 본뜻과는 전혀 다르게 사용하고는 하지요. 엉뚱한데 귀엽고, 왜 그런 말을 쓰는지 이해가 되는 아주 깜찍한 표현들이에요. 말과 글을 배워나가는 아이들이 쓰는 언어는 정말 보물 그 자체입니다. 제 조카는 슈팅스타라는 아이스크림을 먹더니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이스크림이 자꾸 나를 웃기게 해”

이 그림책의 어린이가 쓰는 ‘맛있다’라는 표현 안에는 ‘좋다, 즐겁다, 행복하다’ 등의 긍정적인 뜻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겠지요. 맛있는 음식도, 가족의 사랑도, 친구와 함께 노는 시간도, 부엌의 소리까지 모두 맛있는 걸 보면요.

『맛있는 건 맛있어』에 나오는 맛있는 것들은 참 폭이 넓습니다. 그저 아이들의 구미에 맞추고자 달콤한 디저트나 과자로만 가득 채우지 않았지요. 김치와 설렁탕을 좋아하는 엄마와 아빠, 뜨겁게 먹어도 맛있고 차갑게 먹어도 맛있는 팥, 그리고 음식과 그 음식을 먹는 시간, 장소,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세상 모든 맛있는 건 맛있다는 어린이의 말은 이 세상을 사는 게 참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