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제발!

아기와 가장 만만하게 외출할 수 있는 곳은 역시 백화점이나 쇼핑몰입니다. 수유실과 유아 휴게실, 기저귀 교환대가 한 공간 안에 있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 아기를 데리고 한 쇼핑몰에 방문했습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보호자가 단 한 명만 입장할 수 있었지요. 

“제발, 제발! 잠시만 가만있어 볼까?”

뒤집고, 앉고, 일어서려는 아기를 붙잡아 다시 눕히고 가방에서 기저귀를 꺼내면 아기는 금세 다시 일어나 주변을 탐색합니다. 제가 아기와 씨름하는 동안 옆자리 아기와 엄마는 아주 조용히 기저귀를 갈더라고요. 저는 그 아기가 자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기저귀를 버리려고 보니까 눈이 말똥말똥하게 깨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이렇게 우아하게 기저귀를 갈 수 있다고요?!

홀로 낑낑 아기를 안고 휴게실 쪽으로 나오니 쌍둥이 유모차가 보였습니다. 아기 1명당 보호자 1명이라 쌍둥이는 엄마 아빠가 함께 들어올 수 있었나 봐요. 부부가 정신없이 한 아기를 함께 돌보는 동안 다른 아기는 유모차에 홀로 앉아 조용히 놀고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둘러싸인 아기는 신나게 이유식을 허공에 흩뿌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요.

출산 후 다른 또래 아기를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그동안 우리 아기가 다른 아기와 어떻게 다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날의 외출을 통해서 알았죠. 아, 이것이 바로 기질이란 거구나, 하고 말이지요.  

제 육아에서 가장 큰 힘듦을 차지하는 부분은 단연 기저귀 갈이입니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아기를 어떻게든 붙들어서 더러워진 기저귀를 빼고 새 기저귀를 갈아입히는 것인데, 이게 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쉽지 않았어요. 신생아실 선생님들께도 배우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몇 번을 보며 연습했는데 이상하게 기저귀를 가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전신마취의 영향으로 머리가 나빠진 걸까, 이렇게 쉬운 일도 못 하는 건가? 자괴감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기가 뒤집기를 시작한 뒤론 더 심해졌어요. 응가가 묻은 몸으로 뒤집기를 하고 기어서 도망가면… ㅎ ㅏ. 너무 울고 싶죠. 아기가 도망가지 못하게 붙들고 재빨리 기저귀를 가니 울음이 터집니다. 아아, 나도 너처럼 울고 싶다 자식아!

알고 보니 저희 아기는 유난히 기저귀 갈기가 쉽지 않은 아기였어요. 목을 못 가누던 신생아 시절엔 발과 엉덩이를 쉴새 없이 움직여 기저귀를 밀어냈고, 뒤집기를 시작한 뒤엔 수도 없이 벌러덩 엎드려버리고, 그다음엔 기어서 도망쳤지요. 그러다 바닥에 쉬야를 해서 물바다를 만들면… 응가보다 낫다고 위로하며 얼른 바닥을 닦고 아기를 씻깁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응가입니다. 아기에게 처음으로 큰소리를 냈던 날도 그 응가 때문이었습니다. 응가를 하면 물로 엉덩이를 씻긴 다음 새 기저귀를 입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힘겹게 아기를 안고 세면대에 갔습니다. 아기는 절대 가만히 안기지 않기 때문에 내려가려고 몸을 비틀고 구부리다가 그만 떨어질 뻔한 걸 간신히 다시 안았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쌓여 있던 화가 폭발했습니다.

“아니야!”

왜 가만있어 주지 않을까, 왜 사정해도 들어주지 않을까, 떨어지면 다치는데, 30초만 기다려 주면 씻을 수 있는데 도대체 왜, 왜, 왜.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한데 뒤섞였습니다. 해결책을 찾고자 저와 같은 힘듦을 겪는 양육자가 있는지 검색해 보니 역시 있었습니다(인터넷 만세). 어떤 분은 아기를 눕힌 다음 두 발로 아기의 양어깨를 고정 후에 기저귀를 처리한다고 하더라고요. 댓글에 그건 너무 한 것 같다, 아기 몸을 힘으로 누르는 것은 좀 아니다 등등 의견이 있었지만 저는 응가로 아기 온몸과 바닥이 범벅되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싶어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힘을 주어 고정해야 아기가 아프지 않은지 몰라서 애매하게 눌렀는지 역시나 뒤집고 일어나 도망치더라고요.

그 뒤로도 기저귀를 가는 동안 아기가 최대한 움직이지 않게 하는 여러 방법을 찾았습니다. 장난감을 쥐여 주기도 하고(장난감에 응가가 묻으면 ㅎ ㅏ) 요즘엔 작은 팝업북을 보여줍니다. 물론 팝업북은 다 찢어서 냠냠 먹습니다. 역시 책을 많이 사두길 잘했어요.

 공룡책에는 공룡 머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덕분에 하나도 무시무시하지 않아요.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빨간 글씨로 쓴 ‘고함쟁이 엄마’라는 제목 아래 엄마 펭귄이 아기 펭귄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걷고 있습니다. 제목 때문인지 엄마의 뒷모습에서 어쩐지 화가 느껴집니다.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살짝 뒤를 돌아보는 아기 펭귄은 엄마 손에 거의 끌려가다시피 해서 발이 허공에 떠 있습니다. 주변에서 이런 모습 많이들 보셨지요?

표지를 넘기자 속표지엔 서로를 꼬옥 안고 있는 엄마와 아기 펭귄이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을 넘기면…

오늘 아침,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엄마 펭귄의 커다란 입에서 불꽃 같은 광선이 뿜어져 나옵니다. 깜짝 놀란 아기 펭귄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몸은 허공으로 떠오릅니다.

깜짝 놀란 나는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갔지요.

갑자기 아기 펭귄의 몸이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머리는 우주로, 몸은 바다에, 날개는 밀림 속에, 부리는 산꼭대기에 그리고 꼬리는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직 두 발만이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펭귄은 흩어진 자기 몸을 찾아보고 싶지만 머리에 달린 눈이 우주로 날아가 버려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크게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지만 부리는 산꼭대기로 멀리 가버렸고요. 두 날개로 훨훨 날아보고도 싶었지만 날개도 밀림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은 두 발로 종일 이리저리 뛰다가 결국 사하라 사막에 도착합니다. 그때, 몹시 지친 아기 펭귄의 발 위로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커다란 배를 타고 나타난 엄마가 조각난 아기 펭귄의 몸을 한데 모아 꿰매고 있었지요. 마지막으로 찾은 발까지 붙이자 마침내 아기 펭귄의 몸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다 꿰매고 난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가야, 미안해."

아침에 엄마가 지른 고함에 깜짝 놀란 펭귄의 몸은 지구 곳곳과 우주까지 흩어집니다. 발만 남은 펭귄은 자신의 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저녁 무렵 사하라 사막에 도착하지요. 이글루가 보이는 남극에서부터 사막까지 온종일 몸을 찾아 얼마나 먼 거리를 헤맨 걸까요. 아침에 조각난 몸은 노을 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엄마를 만나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두 발만 남은 펭귄은 입도 뻥긋할 수 없고 무엇도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고함과 화에 큰 충격을 받은 아이의 상황을 이토록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림책에서는 펭귄의 몸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지구 반대편과 우주까지 날아갑니다. 같은 상황에 놓인 어린이라면 어쩌면, 몸처럼 마음도 조각조각 나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 그림책을 보고 난 어린이는 자신의 기분과 마음을 설명할 이야기를 드디어 찾게 되었을 거예요.

속표지 속 다정한 엄마와 바로 다음 장면에 나오는 고함 지르는 엄마는 같은 펭귄입니다. 하지만 아기 펭귄 입장에서는 엄마가 갑작스럽게 나쁜 펭귄으로 변신한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다정했던 엄마가 갑자기 화를 내면 아이들은 혼란스러울 테니까요. 심리학자인 브루노 베텔하임이 쓴 『옛이야기의 매력』(1998, 시공주니어)  속 이야기 하나가 문뜩 떠오릅니다. 옛이야기를 심리학의 관점에서 쓴 책으로 흥미로운 해석과,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책입니다.

<빨간 모자>에서는 인자한 할머니가 갑자기 어린이를 잡아먹겠다고 협박하는 사나운 늑대로 바뀐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얼마나 어리석은 변신이며 또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그런 변신은 쓸데없이 무섭기만 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이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친절하던 할머니가 오줌 쌌다고 자기에게 화를 내며 위협적인 모습으로 갑자기 변신하는 것보다는 덜 무시무시하지 않겠는가? 어린이에게 할머니는 더 이상 방금 전의 그 할머니가 아니다. 할머니는 괴물이 된 것이다.

(중략)이 양극단적인 두 태도 사이에서 어떤 연관성도 찾아내지 못한 어린이는 할머니를 두 개의 분리된 실체(인자한 존재와 위협적인 존재)로 경험하게 된다. 그 여자는 실제로 할머니이면서 또 늑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할머니를 그렇게 두 실체로 분리시킴으로써 어린이는 좋은 할머니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중략) 마찬가지로 엄마도 언제나 모든 것을 주는 보호자이지만, 어린이가 원하는 어떤 것을 거절할 때에는 매정한 계모의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브루노 베텔하임 지음ㆍ김옥순, 주옥 옮김

『옛이야기의 매력 1』 (1998, 시공주니어)

브루노 베텔하임은 이런 옛이야기 수법이 어린이들에게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좋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인물을 그렇게 둘로 분리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린이가 다루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를 푸는 해결책이 된다.”고 말이지요.

아기 펭귄은 몸이 조각난 순간 엄마로부터 멀리멀리 떠나갑니다. 한순간에 돌변해버린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많은 옛이야기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가 그렇듯 아기 펭귄 앞에는 안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던 엄마가 다시 나타나 내 몸을 하나로 만들어 주니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어릴 때 부모님의 분노를 마주한 적이 있을 거예요. 저 역시 갑작스럽게 화를 냈던 엄마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이 얼어붙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엄마도 갑자기 화가 나지는 않았을 테고, 충분히 화가 날 수 있었던 상황일 거예요. 엄마 펭귄의 상황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표지 그림에서 엄마 등을 떠올려 보세요.

하지만 어린이였던 저에게 엄마의 화와 고함은 너무 갑작스럽고 무서웠어요. 아기 펭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엄마의 격분에 아이가 얼마만큼 상처받고 위협받을 수 있는지 그림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언니의 책장에서 『고함쟁이 엄마』를 발견하고 감상을 물었을 때, ‘엄마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이라 대답했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제가 엄마가 되기 전에 이 책을 봤을 땐, 어린이었던 때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을 그림책으로 만나서 묵은 슬픔이 해소되는 기분이었거든요. 엄마가 되고 보니 아기 펭귄에게도 엄마 펭귄에게도 감정이입이 되었습니다.

요즘엔 아기에게 큰소리를 낼 것 같은 상황에선 이 책을 떠올립니다. 언니가 말했던 ‘불편함’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요? 어린아이에게 화를 내는 상황을 경계하게 하는 것. 아이에게 몸과 영혼이 부서지는 경험을 주지 않게 늘 '경계'하게 하는 마음의 불편함 말이지요. 

엄마 펭귄은 커다란 배를 타고 우주와 지구 곳곳을 돌며 아기 펭귄의 조각난 몸을 찾아 하나로 꿰맵니다. 아기 펭귄은 할 수 없는 일을 엄마는 할 수 있어요. 아이 눈에 엄마는 이렇듯 전능하게 보이는 걸까요. 엄마는 우주에 있는 머리와 밀림에 있는 날개를 찾아 마침내는 아기 펭귄의 발이 홀로 도착한 사막까지 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하지요. ‘미안하다’라고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그림책을 함께 살펴볼까요. 엄마는 장난꾸러기 맥스에게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고 소리를 지른 뒤 방에 가둬버립니다. 맥스는 지지 않고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 하고 맞대응합니다. 그러고는 괴물 나라로 모험을 떠나 실컷 놀다가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맥스의 방에는 맛있는 저녁밥이 차려져 있고요.

엄마의 벼락같은 고함에 아기 펭귄과 맥스는 각각 다르게 대응합니다. 펭귄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자신의 조각난 몸을 찾아 떠나지만, 맥스는 엄마에게 으름장을 놓고 신나게 놀고 다시 돌아옵니다. 두 아이의 기질이 참 다르지요?

1963년에 첫 출간된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엄마는 맥스에게 따끈한 저녁밥으로 화해의 손을 내밉니다. 2000년에 첫 출간된  『고함쟁이 엄마』의 엄마는 아이의 조각난 몸을 하나로 모으고 진심을 담은 말로 사과를 건네고요. 아주 다른 주제의 이야기지만, 2020년대를 사는 우리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요. 어른이 먼저 아이에게 언제나 마음을 다해,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사과를 건네고 화해를 청해야 한다고요. 따끈하고 맛있는 저녁밥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언젠가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자식이 부모에게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이 든다면 그건 부모가 잘못한 것이 맞다고 하신 게 기억납니다. 부모는 어른이고, 아이는 어린이니까요. 힘의 크기는 당연히 어른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림책 속 엄마와 아기 펭귄의 몸의 크기, 그리고 엄마에게 속절없이 끌려가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큰 어른은 작은 어린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기를 낳고 나서 엄마에게 억울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몇 가지를 털어놓았습니다. 이미 언니가 먼저 따졌기 때문에 엄마는 별 감흥이 없으시더라고요. 그럼 우짜겠노, 라는 말이 다였죠. 미안하다는 한마디면 쑥 내려갈 묵은 감정인데 말이죠. 저희 엄마 한정 저는 아직 어린이니까요.

언제나 어린이의 편에서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1978년,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 수상 연설문에서 어느 젊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수상 연설문 전문은 『폭력에 반대합니다』에 실려 있습니다. 아름답고 가슴을 울리는 글로 가득 찬 책이니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어쩌면 이 작은 그림책 이야기로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자라면 이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훈육이 필요하고, 언제나 점잖게 타이르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이 작은 이야기를 린드그렌이 전한 일화 속 ‘돌멩이’로 보면 어떨까요? 거칠게, 화를 내며 윽박지르며 말하지 않도록, 아이의 영혼을 산산조각 내는 폭력의 시초가 되지 않도록 이 그림책을 집 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늘 경계하자고요. 오늘 그림책 바구니는 자주 욱하는 저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