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네 집 벽에는 아빠가 찍은 문수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중 아빠가 아기 때 문수를 안은 모습은 병원에서 신생아를 안고 찍은 제 사진과 정말 비슷하더라고요. 화분을 깨 먹은 문수도 그저 귀여워 액자로 남겨 두었네요. 문수가 아빠 몰래 파인애플을 무는 장면에서 아빠의 입에 걸쳐진 미소를 보세요. 이게 바로 아빠 미소입니다. 문수가 아빠를 사랑하는 만큼 아빠도 문수를 사랑하는 게 전해집니다. 문수의 방에 항상 있는 <문수의 비밀>이라는 악보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이 이야기는 사랑하는 문수를 위해 만든 노래니까요.

여자 친구가 생길 때까지 아빠가 좋다는 문수를 보다가 동시대에 계신다는 것이 그저 감사한 오은영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육아의 목적은 바로 아이의 ‘독립’이라는 말씀이었죠. 아이가 자신의 인생에서 좋아하는 걸 하며 살 수 있도록,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갈 힘을 길러 주는 것이 바로 육아라고요. 아빠와 함께 걷는 게 가장 즐거운 문수가 산책길에 다른 강아지와 마주칩니다. 문수에게 드디어 여자 친구가 생긴 걸까요?

『문수의 비밀』은 저의 아기가 허릿심을 길러 마침내 앉기에 숙달한 8개월 때부터 함께 봤습니다. 신기하게도 8개월의 집중력이 괴력을 발휘해 마지막 장면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라고요. 아기가 음악이 나오면 몸을 흔들 정도로 음악을 즐기고 좋아하는 편이라서, 엄마의 목소리로 노래를 들으며 그림책을 보는 게 꽤 즐거웠나 봐요. 지금은 『문수의 비밀』을 펼치기만 해도 엉덩이를 먼저 들썩거립니다.

제가 아기와 책을 보는 동안 동반자는 멀리서 이야기를 듣기만 해서 아빠와 아이가 주인공인 책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주인공이 아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오히려 아주 말이 되는 이야기예요.

오늘은 동반자가 ‘아빠’ 자리에 ‘엄마’를 넣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도 다가가 그림을 다시 보니 문수의 아빠는 엄마 같기도 하고 누나나 형, 이모나 고모, 삼촌 같기도 합니다. 특정 성별도 나이도 보이지 않는, 그저 문수를 아주 사랑하는 이로 그려져 있어요. 아빠의 자리에 누구의 이름이든 넣어 불러볼 수 있답니다.

처음엔 아기가 노래 덕분에 책에 집중하는 것 같았지만, 그림에도 푹 빠져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정하고 소박한 그림의 매력 덕분인 것 같아요. 문수네 집안 가구와 바닥은 곧게 뻗은 직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빠의 셔츠, 소파와 침구, 커튼과 부엌의 타일, 공원의 바닥까지 직선들이 만난 네모반듯한 격자무늬입니다. 직선이 모이면 날카로울 것 같지만 그림은 오히려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곧게 뻗은 선은 확실히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안정감도 주고요. 아기에게 주변의 사물처럼 아주 익숙하면서도 또렷이 잘 보이는 그림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림을 계속 보다 보니 『문수의 비밀』 속 그림은 악보를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곧은 오선지 위 동글동글한 음표가 일정한 규칙으로 반복되듯, 김동수 작가님의 그림도 반복적인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져 마치 노래처럼 느껴집니다. 또 포근한 색감은 사각사각하고 보드라운 이불을 막 덮었을 때처럼 기분 좋은 휴식을 선사하지요.

<문수의 비밀>은 커다란 변주 없이 잔잔하고 고요하게 일정한 리듬이 반복되는 노래입니다. 소박한 악기에 담백한 목소리가 가사를 더 잘 들리고 돋보이게 하지요. 노래와 김동수 작가님의 그림이 서로 같은 호흡으로 헤엄치는 덕분에 이 그림책은 한 편의 잘 만든 뮤직비디오 같기도 합니다.

루시드 폴 : 문수와 제가 손을 맞잡은 장면은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을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김동수 작가: “아빠는 나의 큰 우주”를 듣고 아빠와 문수가 손을 맞잡고 아무도 없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장면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아빠가 문수의 손을 잡아 주는 모습을 생각하고 그렸는데 그리고 나서 보니 문수가 아빠의 손을 잡아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의도대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더 좋았습니다. 문수에게 커다란 존재인 아빠도 사실은 문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창비 블로그

제가 그림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루시드 폴님도 마찬가지였는지 작가님과 나눈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꼽으시더라고요. 넓은 바다에 둥실둥실 몸을 맡기면서도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문수와 아빠. 아빠에게는 문수가, 문수에게는 아빠가 있어서 든든하고 즐거운 날들이에요.

저는 아기를 낳기 전에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잤습니다. 특히 주말에는 더 막살았지요. 하지만 임신을 한 후 9~10시면 잠이 쏟아졌고 눕자마자 코를 골고 잤어요. 주말에도 아침 7시면 눈이 번쩍 뜨였고, 바로 배가 고파서 아침을 챙겨 먹었지요. 지금 아기의 생활 패턴과 비슷한 걸 보면 임신 때부터 배 속에서 저를 조종(?)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네요.

요즘엔 밥을 먹고 싶지 않아도 아기 밥은 해서 챙겨 먹여야 하고, 제가 잠에서 깨고 싶을 때 깬 적이 거의 없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그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고 나를 희생하는 삶이란 점에서요. 하지만 그 삶 속에서 저는 언제나 더 큰 기쁨을 돌려받습니다.

언젠가 동반자가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고 아기가 빨래 위에서 놀다 아빠에게 다가가 안기는 장면을 부엌에 서서 멍하니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오전의 햇살이 두 사람을 밝게 비추고 있었지요. 그 순간, 오늘의 아기는 이제 다시 만날 수 없고, 먼 미래에 우리 부부는 나이 들고 아기가 다 자라 우리 집을 떠나는 상상을 잠깐 했습니다. 찡-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왔습니다.

아기에게는 앞으로 또 다른 우주가 기다리고 있겠죠. 우리 부부는 그저 아기에게 한때의 우주였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기쁘게 축하하고 우리의 남은 삶을 살아가자고 이야기 나누었어요. 그게 우리가 엄마와 아빠가 되기로 한 목적이니까요. 다시 둘이 된 우리 부부의 우주를 잘 가꾸며 살아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오늘 아기가 잠들 기 전 『문수의 비밀』을 함께 보는데, ‘아빠’가 나오는 부분마다 아빠를 바라보며 좋아하더라고요. 아기와 자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빠라면, 함께 그림책을 보고 노래를 불러 보세요. 아기가 정말 기뻐할 거예요. 아기가 아빠를 더 좋아하게 해 주는 그림책입니다. 아기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면 질투 나지 않냐고요? 전혀요. 더 많이.. 더 좋아해, 아빠만 더 좋아해 줘 제발... 엄마는 정말 괜찮단다. 완전 100% 진심입니다.

김동수 작가: 문수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루시드 폴 : 없(었)습니다……. 모태 솔로입니다.

🔗출처: 채널 예스

구독자님인 ㄴㄹ님께서 건강히 출산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기도 ㄴㄹ님도 모두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는지요. 아기님, 이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매일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게 애쓰는 어른이 될게요. 참, 문수는 요즘 부산에서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 곁에서 지내다 보면 곧 여자 친구가 생길 거예요. 다음 주에도 건강히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