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건 당연한 거래 

“구니 씨, 이것만 기억하면 돼.

아기 우는 이유는 딱 세 가지야.

기저귀, 우유, 잠.”

출산 휴가에 들어가기 전, 독일에 계신 번역가 선생님께서 장문의 메일을 보내 주셨어요. 선생님이 체득한 육아 꿀팁이 가득 담긴 감사한 메일이었죠. 아기가 우는 이유는 기저귀와 우유, 잠과 관련된 게 대부분이니 그걸 해결해 주면 된다는 말씀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육아 생각보다 어렵지 않구나, 하고 자신만만했다가 곧 큰코다치고 말았지만요.

100일 전 아기의 일과라고 하면 먹고 자고 싸고 우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그사이 새로 만난 세상을 탐색하고, 자기 몸에 손이 달렸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처음 만난 사람인 엄마 아빠와도 조금씩 친해지고요. 배고파, 배 아파, 똥 쌌어, 기저귀 축축해, 졸리지만 자기 싫어 등 아직 목도 못 가누고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시기의 아기는 모든 것을 울음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많이 울더라고요. 100일까지는 잘 버텨보라던 한 작가님의 말씀을 뼈에 새기며 100일까지 오니 밤에 5~7시간 정도의 통잠을 자고 울음도 아주 약간 줄더라고요.

오랜만에 휴대전화의 음성 메모함을 열었다가 신생아 시절 울음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발견했습니다. 어디선가 아기가 필요한 것에 따라 울음소리가 다르고, 울음소리를 잘 이해하면 욕구를 빨리 해결해 얼른 달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나서 녹음한 것들이었죠. 수유 후에도 울 때, 젖은 기저귀를 갈았는데도 오열할 때, 푹 자고 일어났는데 목 놓아 울 때 등 아기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녹음 파일을 수십 번 다시 듣고 기록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의 육아일기를 열어 보니 ‘오늘도 엄청나게 울었다’는 문장이 가장 많네요. 지금 다시 들으니 신생아 울음소리가 그저 귀여운 걸 보면 요즘 살만해졌나 봅니다. 

소복이 작가님처럼 저도 아기를 낳고 크게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기의 몸에서 발견된 어떤 것 때문에 초음파를 하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을 병원에서 들었던 때였죠. 그 후 아기가 3개월, 6개월 때 각각 두 번의 초음파를 봤고 검사 결과 6시간 금식 후 수면 마취로 MRI를 찍어야 한다(3시간의 공복에도 숨 넘어가게 울던 시절), MRI 결과가 초음파와 같다면 전신 마취 후 수술을 권유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때 알았어요. 저는 평생의 행복과 근심을 동시에 선물 받았다는 걸요.

당시 몸이 너무 작았던 아기의 수술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은 더 작은 아기들도 잘만 마취하고 수술한다고 하셨지만요…. 저의 아기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며 더 많이 울었어요. 이렇게 작은 아기들이 아프다는 사연을 읽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아기가 성장하는 기쁨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쪽은 늘 지옥에 살았죠.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멈출 수 없게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병원을 옮겨 보았어요. 한 달을 기다려 만난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기는 정상이에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MRI도 수술도 전혀 필요하지 않아요. 이제 잘 키우시기만 하면 돼요.”

아아, 또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번엔 안도의 눈물이었어요.

아기가 밤잠을 자다가 아주 서럽게 울며 깨는 날이 종종 있습니다. 어찌나 애달프게 울던지 제 마음도 먹먹해질 때가 많습니다. 아직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 아기 울음의 이유를 다 알지는 못합니다. 대신 많이 이야기해 주는 편이에요. 무서운 꿈꿨구나, 배가 고팠어? 이가 아팠어? 방이 너무 어두워서 무서웠어? 엄마가 옆에 없어서 놀랐어? 제가 추측하는 아기의 슬픔을 저의 언어로 전달해 봅니다. 언젠가는 눈물이 나는 이유를 말할 수 있길 바라면서요. 돌이 지나자 아기가 우는 횟수가 확 줄었고 울음도 아주 짧아졌어요. 이제 팀플이 좀 되는 것 같습니다. 야호, 드디어요!

사계절의 Dear 그림책 시리즈는 전연령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에요. 저는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시작되었고 그래서 그림책의 첫 번째 독자는 늘 어린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연령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 가끔 어린이 독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출간돼 아쉬운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 책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아우릅니다. 특히 주인공이 어린이라는 점이 참 좋았어요. 아이들은 순수하게 정말 궁금해서 '왜요?'라는 질문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울고 있는 이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먼저 다가갑니다. 아이의 물음 덕분에 독자들은 스물다섯 가지 눈물 속에 기쁨과 슬픔, 만족과 고통, 안도와 분노 등 아주 다양한 감정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잘 모르고 사는 어른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