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너무 살이 찌면 안 돼요.”  

처음으로 저를 ‘엄마’라 부른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임신한 지 15주쯤 지나자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엄마’가 너무 살이 찌고 있다, ‘엄마’는 체중 관리를 해야 한다, ‘엄마’ 이러면 나중에 살 빼기 힘들어요, 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만 저는 17킬로를 찌웠습니다). 선생님은 임신 안정기가 되자마자 저에게 엄마라는 정체성을 심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엄마에 담긴 뜻은 환자 또는 병원에 찾아온 임산부 정도겠거니 싶어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애기 엄마, 나 8층 좀 눌러 줘.”

임신 7~8개월을 막 지날 때 즈음이었습니다. 배가 제법 나왔고, 겉옷을 입었지만 누가 봐도 임산부였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께서 저를 ‘애기 엄마’라고 부르시며 버튼을 눌러 달라 부탁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별 뜻이 없으셨겠지만 아직 아기를 낳지도 않았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엄마’로 불리는 게 무척 낯설고 생경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부를 말을 찾지 못해 그러셨겠거니 하고 마음에 담아 두진 않았죠.

여담이지만 아주 색다른 호칭으로 불린 적도 잠깐 있습니다. 조리원을 예약하러 갔던 날, 직원분께서 저를 ‘사모님’으로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황송하여서 고개도 잘 들지 못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조리원에 갔을 때에야 제 귀가 문제였단 걸 깨달았죠. 조리원의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모두 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셔서 이건 아니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 달라 말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산모님, 수유하시겠어요?”

아··· 산모도 좀 이상한데 산모님이라니. 저는 그 후 2주 동안 쭉 산모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출산 전까지도 엄마라는 게 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출산 후 진짜 엄마가 되고 나서는 솔직히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편히 가지 못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아기를 위해 존재하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습니다. 아니 다들 이렇게 힘든 일을 해냈고 또 해내고 있다고? 그런데도 고작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말이야? 이렇게 힘들다고 왜 아무도 안 알려 줬지? 아기를 낳은 친구들과 그런 얘기를 나눈 적 있습니다. 아기를 낳을 생각이라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신생아와 함께 지내는 경험을 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그때 한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아무도 아기 안 낳을걸.”

아기를 낳자마자 ‘엄마’로 사는 새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아기를 낳고 나서는 낳기 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삶이었지요. 하지만 지금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엄마라니. 내가 엄마라고? 내가? 나?? 나 엄마라고???”

아기의 시선으로 표현된 다소 의뭉스러운 글과 극사실주의 그림이 어우러져 눈물이 날 만큼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그림책 내내 피곤함에 찌든 엄마의 얼굴은 정말 실감 나지요. 제 아기가 50일 무렵, 분명 세수를 했는데도 50일은 씻지 않고 50일은 못 잔 얼굴을 거울 속에서 발견했던 기억이 나네요.

엄마로 태어난 사람은 일과 모두가 아기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하루 중 대부분을 아기의 먹이 활동에 치중하고 배변 활동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죠. 아기는 그런 엄마를 보고 엄마가 자신을 위해서도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깁니다. 판타지임을 참작해도 아기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 상상하니 너무 고맙고 위로가 됩니다.

또 아기가 이런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하니 뜨끔한 장면이 한둘이 아닙니다. 휴대전화(네 저는 인터넷 중독입니다)를 보는 엄마를 빤히 바라보는 아기를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아기의 일과가 아무리 규칙적이라고 해도 대체로 대중이 없고 짬 내서 잠깐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인터넷(이라고 변명해 봅니다)입니다. 엄마로 태어난 후 저의 쇼핑 영역은 더 넓고 깊어졌습니다. <엄마의 상자> 편에서 택배 상자로 가득 찬 집안 그림은 남 일이 아니랍니다. <엄마의 가방> 편 속 엄마 모습은 또 어떻고요. 한쪽 어깨엔 접이식 유모차를 나머지 어깨엔 어른 몸통만 한 커다란 가방을 이고도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외출 준비를 합니다. 어떨 땐 립밤과 지갑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백을 들고 외출했던 게 전생 같습니다.

아기와 이 그림책을 여러 번 같이 보았지만, 아기는 한두 장면 정도만 함께 읽고 금세 흥미를 잃었습니다. 표지 그림 속 아기가 들고 있는 돋보기의 매끈한 부분만 열심히 촉감 놀이로 즐기더라고요. 그렇지만 줄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게 아니라서 어느 장면이나 펼쳐서 함께 보기에 좋았습니다. 아마 아이가 좀 더 자라 대여섯 살쯤 되면 네가 아기 때 엄마는 이랬단다 하며 함께 보기에 더욱 재미날 것 같습니다. 

갓난아기는 철저하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요. 그렇다면 갓난 엄마는 누가 보살펴 줄까요? 도감 속 엄마를 보며 갓난 엄마로  살았던 작년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 엄마가 그저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죠. 조금이라도 아는 사이라면, 아니 모르는 사이라도 집에 가서 아기를 잠깐 안아 주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밥이라도 앉아서 먹고 화장실이라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게 해주려고요. 

한 사람의 이만한 희생이 있지 않고서는 한 명의 아기를 어른으로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외롭게 고군분투 중인 갓난 엄마들을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는 작가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누군가는 엄마인 당신의 그 수고스러움과 희생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해 주는 그림책이에요. 굳이 엄마로 사는 인생을 선택한 당신께, 아기와 함께 자라는 엄마의 삶을 그 누구보다 응원한다고요.

책의 말미에 나오는 <엄마 탐구 영역>의 문제도 놓치지 말고 꼭 풀어 보세요. 객관식 문제와 보기, 답 모두 섬세하게 엄마에게 위로를 건네면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아 마지막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