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기가 첫 생일을 맞았습니다. 지난겨울 출산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사이 누워만 있던 아기는 여름에 뒤집기를 하고 가을엔 혼자 앉더니 겨울엔 걸음마를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발전적인 존재였다니, 직립보행을 막 앞둔 아기의 얼굴을 그저 신기하고 기특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아기와 퇴원한 뒤엔 조리원에 갔었습니다. 2주간 지낼 방에 도착하자마자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아기를 받아 주셨고,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나오자 따뜻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아직도 내가 아기를 낳은 것인지 실감하지 못하며 밥을 먹었는데 갑자기 수유를 도와주는 선생님께서 오셨지요. 어느 순간 저는 누워 있었고 모유 수유를 위한 마사지가 시작되었습니다(오늘 처음 만났는데...). 잠시 뒤엔 아기가 제 팔에 안겨 있었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수유를 시도했지만 아기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모자동실 시간 때마다 아기는 자거나 울었고 저는 바들바들 떨며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안고 작은 방을 종종거리며 걸어 다녔습니다.

생각해보면 조리원에서부터 산후 우울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가족을 포함한 모든 면회가 금지되었고, 산모들끼리의 교류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수유콜이 오면 모유 수유를 시도하고 모자동실 시간에 아기를 보고 밤이 오면 잠을 자고 3시간마다 깨서 유축을 하고 그러다보니 2주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모성애가 없는 것 같다는, 어쩐지 나만 다른 엄마들과 다르게 조금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 말이죠.

아기를 낳으면 모성애가 바로 생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성애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이라고들 하니까요. 아기에게 보호 본능은 생겼지만 제 배에서 나왔다고 해도 아직은 어색한 사이인데, 이게 모성애이고 사랑이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임신 때부터 자주 가던 맘카페에 ‘모성애’를 검색해 보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너 모성애 있니? 하고 묻기도 했었죠. 그때는 지금처럼 아기를 너무 사랑하는 저를 발견하는 날이 오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오늘도 아기를 웃게 해 주려고 열심히 함께 네 발로 기고 까꿍을 수백 번쯤 하는 제 얼굴엔 아기와 같은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 이 마음과 이 헌신이 사랑이 아니면 대체 무엇일까요. 저에게도 드디어 모성애가 생긴 걸까요?

브루키는 작은 양과 함께 살아

브루키는 작은 양을 아주 사랑했지

이 책의 제목은 『브루키와 작은 양』 입니다. ‘어린이’ 브루키가 ‘작은’ 아기 양을 돌보는 이야기지요. 노오란 표지 속 그림에는 브루키가 작은 양의 목을 꼬옥 끌어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브루키의 품에 안긴 양의 표정도 브루키와 똑 닮았습니다. 작가인 M. B. 고프스타인은 책 서두에 '나의 남편에게'라는 헌사를 남겼습니다. 오직 단 한 명, 인생의 동반자에게 바치는 사랑 이야기였죠.

돌이켜보면 아기에게 화가 났던 순간은 아기가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나는 너무 자고 싶은데 아기가 잠들지 않을 때, 나는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아기가 내내 울며 보챌 때, 나는 기저귀를 갈고 싶은데 응가를 한 아기가 나를 향해 발차기를 날릴 때, 위험한 물건이라 얼른 치운 건데  대성통곡할 때. 아기는 저를 향한 적의가 없고, 그저 본능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내 뜻과 달라 속이 상했던 숱한 날들을요. 그런 아기를 제 입맛에 맞게 바꾸려 했던 날들이 떠올라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1967년에 처음 출간되어 50여 년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사랑에 관한 이 짧은 고전은 사랑은 이래야 해, 라고 알려 주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저 어린이 브루키와 작은 아기 양의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진정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갈 때 우리가 가지면 좋을 태도와 마음을요. 작은 양의 표정에서 저는 아기의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아기는 작은 양처럼 한결같이 제 곁에서 저만 바라보며 언제나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 무해한 사랑에, 이렇게 부족한 나를 사랑해 주는 아기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그림책은 어른 손바닥만 할 정도로 작지만 본문의 종이는 도톰하고 탄성이 넘쳐서 잘 구겨지지 않습니다. 아기가 잡기 좋은 판형에 종이는 두께가 있어서 직접 넘기며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한두 장 읽었을 때 멀리 달아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아기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요. 브루키가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