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안녕

작년 이맘때쯤 제왕절개 수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수술 전날 밤 10시까지 알차게 먹고 잠을 청했더랬죠. 그런데 자정쯤 뭔가 흐르는 느낌이 나서 확인해 보니 하혈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다행히 빠르게 병원으로 이동해서 여러 검사를 마친 뒤 무사히 예정대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전신마취를 했기에 아기는 바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순간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어요. 눈물이 주룩주룩 났고, 인기척이 느껴져 살려달라고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아기는 건강한지 걱정이 되었지만 병실로 이동 후에도 아기를 바로 만날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로 모자동실은 없어졌고 정해진 면회 시간에만 겨우 아기를 볼 수 있었거든요. 동반자의 휴대폰 속 사진으로 먼저 만난 아기는 저처럼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언뜻 아버님을 닮은 것 같았지만(충격) 다행히 저를 닮아 입가에 피어오른 보조개가 보였습니다. 고대하던 면회 시간, 유리창 너머로 처음 만난 아기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기를 보자 저도 모르게 속삭이듯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가야, 안녕.”

 가애 『방긋, 안녕』 (2021, 창비)

방긋, 안녕!

사계절이 담긴 표지를 펼치자 작은 새싹이 인사를 건넵니다.

"아가야, 안녕"

꽃과 나비, 고양이와 강아지, 무지개와 구름, 다람쥐와 도토리, 새와 나무와 별과 눈사람까지. 때론 사랑스럽고 때론 인자하고 때론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띤 이들이 아기를 향해 방긋, 인사를 건넵니다. 장면마다 크고 선명하고 화사한 그림과 해사하게 웃고 있는 인물들은 보는 이도 방긋, 미소 짓게 합니다.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에서 시작해 계절은 여름과 가을을 건너 겨울에 도착합니다. 겨울 속 눈사람도 방긋 인사를 건네지요. 그런데 눈사람의 인사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조금 슬프게 느껴집니다.

“ㅇ ㅏ ㄴ ㄴ ㅕ ㅇ”

눈사람은 서서히 녹아 없어지고 말았죠.

그때, 녹아 없어진 눈사람이 쓰고 있던 모자를 지나가던 아기가 발견합니다. 아, 작가님은 어쩜 이맘때 아기를 이렇게 잘 표현하셨는지요. 바가지 머리에 통통한 볼, 짧고 똥똥한 다리로 뒤뚱뒤뚱 열심히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는 꽉 안아 주고 싶게 사랑스럽습니다. 눈사람의 모자 속에는 아기가 처음 만났던 봄의 새싹이 숨어 있었습니다. 새싹이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까꿍, 또 만났네!” 

글의 양이 적고 아주 반복적이지만 여러 번 읽어 주다 보면 새로운 말도 넣고 자연이나 동물의 이름과 의성어 의태어 들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읽어 주기 좋습니다. 이는 아기를 위한 재미도 있지만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하는 양육자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어멈이 되고 보니 초점책도 읽을 수 있게 되었기에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아기책 치고는 판형(책의 크기)도 꽤 크고 읽다 보면 한 살 아기가 집중해서 읽어 내기에는 다소 분량이 많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어멈이 되고 보니 좋은 것을 꾹꾹 눌러 담아 아기에게 가득 주고 싶은 마음. 이 한 권에 그 좋은 것들을 다 담아서 ‘자, 이 세계에 온 너희들을 위한 거란다’ 하고 내미는 커다란 마음. 그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한없이 넉넉하고 먹먹해집니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에게 온 세상 모든 이들이 이렇게 너희를 환영한다고, 이 환영과 축복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믿음을 주는 든든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유치가 나는 괴력의 아기는 보드북도 찢고 먹습니다.

아기와 책을 함께 보다 보니 이 단단한 보드북의 장점이 더 도드라집니다. 그림책의 펼침면에서 왼쪽면을 살짝 누르면 오른쪽면이 저절로 떠서 아기가 스스로 잡고 넘길 수 있게 됩니다. 소근육을 열심히 발달시키는 중인 아기에게 직접 책을 넘기는 기쁨을 주는 구조였지요(아, 물론 갑자기 책을 닫을 수도 있게 됐어요. 뒤표지로 훅 넘겨버리기도 합니다...). 왼쪽면을 슬그머니 누르면 아기는 냉큼 오른쪽 면을 잡고 스스로 넘깁니다. 왔다 갔다 책장을 신나게 넘기다 보면 어느 날 깨닫게 되는 날도 오겠지요. 앞장에서 반갑게 맞아 주었던 빨간 튤립이 나풀나풀 나비가 나오는 장면에도, 가르랑가르랑 고양이네 창밖에서도 아기를 바라보며 항상 인사를 건네고 있다는 것을요.

저는 비로소 이 책에 담긴 ‘안녕’의 여러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도 ‘안녕’, 헤어질 때도 ‘안녕’의 인사를 건넵니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며 관계를 쌓고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나눠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녕이란 인사엔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히 ‘안녕’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만남의 ‘안녕’과 헤어짐의 ‘안녕’ 그리고 건강함의 ‘안녕’을 모두 담은 『방긋, 안녕』은 엄마의 몸과 분리되어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에게 이 세계에 아주 잘 왔다고, 앞으로도 세상 모든 것들과 이렇게 안녕하며 함께 즐겁게 놀자고 인사를 건네는 그림책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써 본 글이라 어수선합니다. 하지만 매주 쓰다 보면 더 잘 쓰게 되겠지요? 레터 양식도 조금씩 보기 편한 방법으로 다듬어 보겠습니다. 모두들 방긋, 안녕! 다음주 수요일에 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