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다녀 올게! 하늘 나라 선녀님
엊그제 금요일, 휴가를 내고 가족 여행을 짧게 다녀왔습니다. 육아휴직 후 달리기에 푹 빠진 동반자가 트레일 대회에 참가하게 되어 온 가족이 응원을 다녀왔었지요. 금요일에는 바람이 조금 불기는 했지만 날씨도 선선하니 맑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새벽에 깬 아이 울음소리에 눈을 뜨자 빗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트레일 대회 날인 토요일 오전엔 내내 비가 왔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산을 그냥 오르는 것도 아니고 뛰면서 오르는 대회에 참가하는 분들이 엄청 많아서 무척 놀랐습니다. 책상 노동자인 제가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운동을 즐기고 좋아하는 이들의 건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지요. 동반자도 신나게 달려 특별 기록 선수에게만 주어지는 선물도 받고 돌아왔습니다(오예!).
펄 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 <눈> 작사 이태선, 작곡 박재훈
어릴 적 배운 동요 덕분에, 저는 꽤 오랫동안 눈은 '선녀님'이 내려 준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눈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도 그렇지 않을까 막연하게 상상하곤 했었지요. 제가 상상한 '선녀님'의 이미지는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 옛이야기가 된(이유는 다들 아실 것이라...) <선녀와 나무꾼> 속 선녀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늘하늘 날개옷을 입고 땋은 머리를 동그랗게 날개 모양으로 말아 곱게 단장한 여신 느낌이었지요. 백희나 작가님의 『이상한 엄마』 표지를 본 순간 딱 제가 상상했던 선녀님이 떠올랐습니다. 구름에 얼굴이 가려져 있어 어떤 얼굴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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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에는 엄청난 비가 쏟아졌습니다.
'이런이런······
흰 구름에 먹을 쏟아 버렸네. 이를 어쩌지?'
봄비가 쏟아지는 어느 4월, 회사에 있던 호호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호호가 몸이 아파 조퇴했다는 연락이었죠. 회사에 발이 묶인 엄마는 몸이 아픈 호호가 집에 혼자 있는 게 걱정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호호를 부탁하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비' 때문이었을까요?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수화기 너머로는 이상한 잡음만 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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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희미한 대답이 들렸습니다.
"여보세요? 엄마?"
"으······응?"
"휴, 살았다.
호호가 아프대요.
엄마가 집에 좀
봐 주실래요?"
"호호?"
간신히 연결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검은 실루엣이 표지에서 본 선녀님을 닮았습니다. 아무래도 호호 엄마가 전화를 잘못 건 것 같지만, 또 아주 잘못 걸지는 않았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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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엄마라니······. 잘못 걸려 온 전화 같은데.
아이가 아프다니 하는 수 없지.
좀 이상하지만 엄마가 되어 주는 수밖에.'
이상한 전화를 받은 이상한 엄마는 날개옷을 펄럭이며 구름을 타고 빗속을 나아갑니다. 그리고 호호가 사는 집으로 '내려' 옵니다. 봄비가 내려 쌀쌀한 바깥처럼 추운 호호네 집, 이상한 엄마는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다 냉장고에서 찾던 것을 발견합니다. 면지에 한가득 있던 '달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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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당연히 집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호호는 인기척에 가장 먼저 엄마를 찾습니다. 하지만 부엌에서 호호를 기다리던 사람은 '이상한' 엄마였지요.
"그래그래, 네가 호호로구나.
너희 엄마 부탁을 받고 부랴부랴 왔단다.
오늘은 날 엄마라고 생각하렴."
이상한 엄마의 모습은 조금 이상했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말에 호호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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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엄마는 아픈 호호를 위해 달걀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부엌이 노란 안개로 가득 찼지요. 아직 몸이 찬 호호를 위해 이번에는 지글지글 달갈 프라이를 부쳤습니다. 달걀 프라이가 노오란 해처럼 떠오르자 집안은 따끈따끈해지고, 호호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따뜻해진 덕분에 집안은 건조해져 호호의 코가 막혔습니다. 이쯤 되면 이상한 엄마가 호호를 위해 집안을 다시 촉촉하게 만들어 주겠구나, 하고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상한 엄마는 날씨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선녀님이니까요.
"이제 한숨 푹 자고 나면 엄마가 오실 게다.
걱정 말고 좀 쉬렴."
이상한 엄마는 우유와 달걀흰자로 만든 구름으로 집안 습도를 알맞게 만듭니다. 가장 크고 푹신한 구름에 호호를 눕히고 호호가 잠들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지요.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을 호호 엄마는 곤히 잠든 호호의 모습을 보고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엄마도 포근한 구름 위에 누워 호호를 꼬옥 안고 푹 잠이 들지요. 한숨 자고 나니 거실에는 달걀로 만든 엄청난 저녁밥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아, 이상한 엄마는 역시 뭘 좀 아십니다. 이상한 엄마는 호호 엄마에게도 '이상한 엄마'였던 거예요(자고 일어났는데 밥을 안 해도 된다니! 오예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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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기의 첫 어린이집 적응기는 험난했습니다. 3월 내내 감기가 나았다 다시 걸리기를 반복하더니, 4월 첫 주에는 하루 종일 먹은 걸 다 토해내는 장염에 걸렸습니다. 염증 때문인지 열도 나고, 어금니 앓이까지 겹쳤지요. 저도 동반자도 근 두 달 동안 잠을 길게 자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기가 아프면 (특히) 엄마는 일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선배님들은 다 지나간다고 하지만, 아픈 아기를 돌보다 보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더라고요. 지금은 다행히 육아휴직 중인 아빠가 아이를 돌보고 있지만, 동반자도 복직하고 나면 저도 호호 엄마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날들이 자주 생기겠지요. 그래서 더욱 '이상한 엄마'의 존재가 참 고맙고 귀했습니다.
'아이가 아프다니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에 담긴 당연한 너그러움이 어찌나 감사하고 든든한지요. 아픈 어린이와, 그 어린이의 보호자를 위해 선뜻 하늘에서 내려와 준 선녀님의 존재만으로도, 선녀님이 만들어 놓고 간 엄청난 오므라이스를 다 먹은 것처럼 배가 부르고 몸이 따끈해집니다. 아마 이 그림책을 함께 본 아기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아기가 그림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엄마와 호호가 꼬옥 끌어안고 자는 장면입니다. "우리도 호호랑 엄마처럼 안고 잘까?" 하고 그림책을 보다 말해줬더니, 배시시 웃으며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자다 깨서도 "엄마 안고! 엄마 안고! 어어어어어엉엉엉엉"하며 대성통곡을 하는 요즘입니다. "이상한 엄마처럼 안고 잘까?" 하고 먼저 말하기도 하고요. 새벽 출근 준비를 하다 보면 가끔 잠이 깬 아기가 제 방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눈도 못 뜬 아기를 꽉 안아 주고 나면 아기는 궁뎅이를 들이 밀며 제 무릎에 딱 앉아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고는 "엄마는 회사에 가지?"라고 덤덤하게 말을 합니다. "응, 호호 엄마처럼 회사에 갔다가 올게!" 저는 씩씩하게 대답하지요. 엄마가 함께하지 못하는 날에도 이상한 엄마 같은 좋은 어른을 이 세상 곳곳에 선녀님이 내려 주셨을테니까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엄청난 이야기 『이상한 엄마』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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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덩이 아범의 육아 일지 - 반찬 만들고 운동하는 아버지의 일상
밤에 자려고 누워서 복덩이가 “엄마 사랑해, 아빠 미워”라고 말했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서 미안했다. 이번 주에 화를 많이 냈다. 복덩이가 감기 걸리고 불편하니까 짜증도 많이 내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이 하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걸 내가 못 참았다. 생각해 보니 이번 주에 밤에 쓸데없이 휴대폰 보고 하느라 늦게 자서 잠이 부족했다. 나도 밤에는 잠을 충분히 자서 내 신경을 좀 안정시켜 둬야겠다.
요즘 복덩이가 밥을 너무 안 먹는다. 어제오늘은 밥을 5분에 한 숟갈씩(정확히는 손으로) 먹으면서 아직 밥 먹고 있다면서 계속 식탁에 앉아있기도 했다.(참은 게 용타...) 저녁에 우유 마시고 많이 게웠는데 아마 요즘 감기 때문에 아파서 속도 안 좋나 싶다. 오늘 유일하게 잘 먹었던 반찬은 무나물들깨볶음이었다. 이건 자주 해줘야겠다. 그런데 오이를 살짝 절여서 참기름에 볶아서 줬더니 또 그건 안 먹었다. 그냥 이전처럼 삶아서 줘야겠다. 내일은 참타리버섯들깨볶음을 만들어봐야겠다. 들깻가루나 들기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왠지 잘 먹을 것 같다.(우리 집에서 대장금 나겄어.)
어제 복덩이 상태가 많이 괜찮아져서 인천국제하프마라톤대회(10K 부문)에 같이 다녀 올 수 있었다. 복덩이한테 달리기하는 거 보여주고 싶어 신청했던 대회라서 같이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회 출발지인 경기장 내부 들어가는 통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 혼자 들어가서 출발했다. 출발 후 경기장을 나와서 달리다가, 주로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복덩이와 바구니를 보니 힘이 났다(아부지를 보낸 이후로 구급차와 소방차 구경을 30분 함...). 그래서 초반에 오버페이스 해버렸다. 원래 계획은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조깅하려 했는데, 그냥 열심히 달려버렸다. 반환점을 돌고 오는 길이 오르막이기까지 해서 진짜 힘들었다. 달리기 한 이후로 제일 힘들게 달린 것 같다. 하지만 경기장 트랙으로 들어와서 결승점이 보이자 다시 힘이 났다. 바구니와 복덩이가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며 전력 질주해 단숨에 수십 명을 제쳤다. 그런데 너무 빨리 달려서 복덩이와 바구니가 어디 서 있는지 못 본 것 같았다. 아차 싶었다. 조금 천천히 달리면서 손을 흔들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바구니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맥도날드에서 팬케이크를 먹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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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그림책 바구니 보러 가기
4월의 마지막 날, 그림책 바구니 잘 받으셨나요?
내일도 노동절이라 아기와 꼭 붙어 있을 수 있어 기쁜 일요일입니다.
다음 그림책 바구니는 5월의 마지막 날에 뵙겠습니다.🌝
다음 그림책 선정은 인스타그램 @bookbaguni 에서 안내해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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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에 포함된 이미지는 출판사에서 공개한 부분만 사용하였으며 저작권은 작가님과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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